봄날에 1. 봄날에 1 이 수 익(1942~ ) 봄에는 혼자서는 외롭다, 둘이라야 한다, 혹은 둘 이상이라야 한다. 물은 물끼리 흐르고 꽃은 꽃끼리 피어나고 하늘에 구름은 구름끼리 흐르는데 자꾸만 부푸는 피를 안고 혼자서 어떻게 사나, 이 찬란한 봄날 가슴이 터져서 어떻게 사나. 그대는 물 건너 아득한 섬으로만 떠 있.. 시가 있는 아침 2005.03.31
빙 어 빙 어 - 중에서 고 진 하(1953~ ) 그 어느 날 강가에서 속 없는 은빛 날고기를 먹었었지. 속이 환한 널 처음 보며 얼마나 눈부셔 했던가. 나무젓가락으로 펄펄 살아 뛰는 너를 집어 초고추장에 휘휘 저어 먹으며 얼마나 찜찜해 했던가. 먹고 먹히는 것이 산 것들의 숙명이라지만 감출 죄의식조차 없이 투명.. 시가 있는 아침 2005.03.29
붉은 장미 꽃다발 붉은 장미 꽃다발 - 중에서 김 혜 순(1955~ ) 네 꿈의 한복판 네 온몸의 피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눈을 뜰래 네 살갗 밑 장미 꽃다발 그 속에서 바짝 마른 눈알을 치켜뜰래 네 안의 그 여자가 너를 생각하면서 아픈 아코디언을 주름지게 할래 - 중 략 - 너무 위태로워 오히려 찬란한 빨간.. 시가 있는 아침 2005.03.24
화 투(花鬪) 화 투 최 정 례(1955~ ) 슬레이트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뚝 또 뚝 떨어지구요 창에 기운 오동 꽃이 덩달아 지네요 종일 추녀물에 마당이 파이는 소리 나는 차 배달 왔다가 아저씨와 화투를 치는데요 아저씨 화투는 건성이고 내 짧은 치마만 쳐다보네요 청단이고 홍단이고 다 내주지만 나는 시큰둥 풍약이.. 시가 있는 아침 2005.03.23
음악들.. 음 악 들 박 정 대(1965~ )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열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멸,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압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 시가 있는 아침 2005.03.21
내 안의 식물 내 안의 식물 이 문 재 (1959~ ) 달이 자란다 내 안에서 달의 뒤편도 자란다 밀물이 자라고 썰물도 자란다 내 안에서 개펄은 두꺼워지고 해파리는 펄럭거리며 미역은 더욱 미끄러워진다 한켠에서 자라도 자란다 달이 커진다 내 죽음도 커지고 그대 이별의 이후도 커진다 죽음의 뒤편도 커지고 이별 이전.. 시가 있는 아침 2005.03.18
탕 진 탕 진 문 혜 진(1976~ ) 가끔씩 난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곤 해.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러면 어떤지 알아? 하드보일드하게 지루하지 뭐. 전인권의 <행진>을 탕진으로 바꿔 부르는데 그것도 지루하면 펭귄으로 불러 - 중 략 - 그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두 써버리겠어 아무것도 아.. 시가 있는 아침 2005.03.16
지렁이의 말 지렁이의 말 최 승 호(1954~ ) 눈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우상도 두지 않았다. 팔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나는 구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먹고 사는 일만으로 충분히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고행보다는 잠을 선택했다. ------------------------------------------------------- 욱~~ 뱀, 거머리, 지렁이... 다시 윽.. 내가.. 시가 있는 아침 2005.03.15
입마춤 입 마 춤 서 정 주(1915-2000)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뜨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산노루떼 언덕마다 한마릿식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 시가 있는 아침 2005.03.14
일요일 일요일 - 중에서 이 수 명(1965~ ) 일요일에는 강물이 얕아진다, 나는 뾰족한 발가락으로 강바닥과 이야기를 나눈다. 물풀 위에 앉아 모래로 이루어진 절벽이 춤추는 것을 바라본다. 바위들은 입을 벌리고, 자동차들이 뛰어다닌다. 내가 데리고 나간 원숭이가 모래 춤을 춘다. 일요일에는 빛이 그림자를 .. 시가 있는 아침 200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