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화 투(花鬪)

여디디아 2005. 3. 23. 09:53

화 투

 

 

최 정 례(1955~        )

 

 

슬레이트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뚝 또 뚝  떨어지구요

 

창에 기운 오동 꽃이 덩달아 지네요

 

종일 추녀물에 마당이 파이는 소리

 

나는 차 배달 왔다가 아저씨와

 

화투를 치는데요

 

아저씨 화투는 건성이고

 

내 짧은 치마만 쳐다보네요

 

청단이고 홍단이고

 

다 내주지만

 

나는 시큰둥 풍약이나 하구요

 

창 박을 힐끗 보면

 

오동꽃이 또 하나 떨어지네요

 

- 중  략 -

 

흑싸리가 기울어 울고 있구요

 

아저씨도 나처럼 한숨을 쉬네요

 

이매조가 님이란 건 믿을 수가 없구요

 

- 중  략 -

 

한심한 빗소리는 종일 그치지를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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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력해도 되질 않는 것이 있다.

화투.

명절이면 시간을 잊은채로 연신 팔을 두드려 대는데

도무지 난 재미가 없다.

결혼후 남편에게 화투를 배웠지만 아직도

쇼당이 무언지 어떻게 팔아야 하며

어디서 두짝의 화투를 내려놓아야 하는지 모른다.

슬레이트 처마밑으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커피를 가져온 아가씨와 할일 없는 아저씨가

시간을 메우기 위하여 광을 팔고 피박을 씌우고..

라디오에선 흘러간 유행가가 구슬피 흐드러지고

아저씨의 눈은 화투패 대신 젊은 아가씨의

허벅지와 가슴만 오르내리고..

이 한심한 풍경이,

짓물나게 짜증스런 풍경이

오늘아침 나른한 평화를 느끼게 하는건 무슨 이율까?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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