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빙 어

여디디아 2005. 3. 29. 14:12

빙 어 - 중에서

 

 

고 진 하(1953~       )

 

 

그 어느 날 강가에서

 

속 없는 은빛 날고기를 먹었었지.

 

속이 환한 널 처음 보며 얼마나 눈부셔 했던가.

 

나무젓가락으로 펄펄 살아 뛰는 너를 집어

 

초고추장에 휘휘 저어 먹으며 얼마나 찜찜해 했던가.

 

먹고 먹히는 것이 산 것들의 숙명이라지만

 

감출 죄의식조차 없이 투명한 생을

 

너무 사납게 씹고 또 씹었던 것은 아닌가.

 

먹을 것이 왜 하필 여리고 속 없는 것이어야 했던가.

 

속없으니 뒤탈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가

 

아작아작 투명한 것을 씹어

 

불투명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던가.

 

- 중  략 -

 

속없이 눈부셨던 널 떠올리면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자꾸 물어서 뭘 또 건지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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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겨울강,

휘어지듯이 긴 의암댐을 지나고

평평하게 펼쳐진 춘천댐을 만났을 때,

강물위에 투명하게 얹힌 시린 얼음보다

그 속에 펄펄 뛰는 힘찬 빙어들의 몸놀림보다

아빠와 함께 낚시바늘에서 낚아내는 아이들의

손끝에 달린 빙어보다

추운줄 모르고 빙어가 뛰는 강물위에서 폴짝거리는

우리집 강아지 햇님이보다

팔짱을 낀채로 겨울 춘천댐을 거닐고 있는 젊은 연인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씨.

'빙어회 한접시 5000원, 빙어튀김 5000원'이라는

빨갛고 비뚤어진 글씨들..

투명한 물빛속을 들여다 보기도 전에

펄펄뛰는 빙어는 어쩐지 미안해서 튀김을 먹곤한다.

튀김을 먹으면서도 어쩐지 옆에서 은빛을 휘날리는

빙어와 빨간 초고추장에 자꾸만 눈이 가는 나,

옆에서 빙어회를 먹는 사람이 기어코 권한다.

찜찜하지만  먹고픈 충동을 이기지 못한채

멸치처럼 생긴 은빛 빙어 두 마리를 낚아 입으로 가져간다.

입을 거치고 목구멍을 거친 빙어가

뱃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린다.

춘천댐의 어느 물줄기인줄 알고..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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