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라! 53

남양주시청에서 평내

시청에서 시작되는 들머리 눈 감고도 올라가는 갈림길 여름이 아직도 남았으려니, 추석이 지났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여름이 좀 남았을 테고 가을은 아직 저만치서 기다릴 테고, 아직 초록은 지칠 줄 모르고 푸르뎅뎅하리라 여겼던 것은, 유난히 바쁜 날들이 나를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추석을 보내고 남편이 열흘쯤 감기로 헤롱헤롱 거려 속을 뒤집는가 싶다가 그 감기를 내게 떠넘기고는 훌쩍 일본으로 날아가고 혼자 남은 내게 일은 염치없이 시간 속에 묻혀서 쓰나미처럼 몰아쳤다. 동생부부를 불러내고 밤이고 새벽이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마음이라기보다는 고객들의 영업에 지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다. 어느 날은 추워서 이미 겨울인가 싶다가, 어느 날은 맞춤한 날씨가 가을인가 싶다가,..

산이 좋아라! 2023.11.03

평내에서 금곡

일주일에 두 번은 백봉산 줄기를 더듬는다. 지난주는 비가 내리고, 날이 추워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못 갔다. 함께 가는 이들이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혼자 나섰다. 다른 때보다 한 시간 이르게 시작한 산행, 조붓한 오솔길은 먼지가 없어 함초롬한 가을국화 같은 분위기이고, 밤이며 도토리도 거짓말인 듯이 자취를 감추어 길이 오롯이 길의 역할을 감당했다. 입구를 들어서니 분위기가 다르다. 일주일 만에 이렇게 바뀌다니 놀랍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풀리면 다시 여름 같은 따뜻한 날이 오리라 여겼는데 이미 가을의 중심에 서 있다니... 나무마다 노란색과 볼긋한 색이 스며 새색시 얼굴처럼 곱다. 노란 단풍을 보니 불현듯 어릴 적 먹었던 호박지짐이가 생각나고 엄마가 생각난다.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면 부치 개를 만들며 ..

산이 좋아라! 2021.10.28

곰배령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산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가 좋아? 봄 언제인가 TV에 곰배령이 등장했다. '인간극장'에서 딸과 아버지가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때부터 곰배령에 대한 나의 마음은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코로나로 교회에서 영상예배가 생활이 된 듯하고 어느새 편안한 늪에 빠져 자유로운 주일을 보내고 있는 나를 본다. '모든 예배를 회복해야지' 하는 다짐보다 점봉산 곰배령을 예약하는 손길이 더 날렵하다. 곰배령 입산시간을 10시로 예약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설치기보다는 토요일 오후에 속초에서 하루를 묵고 1부 예배를 드리고 산을 오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토요일에 속초로 향했다. 여유로운 시간이라 인제의 낚시터를 확인하고 소양강 둘레길을 눈으로 ..

산이 좋아라! 2021.05.25

천마산

코로나 19로 여전히 조심스러운 교회 예배, 덕소교회에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날이다. 오전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산으로 향했다. 요즘 걷는데 미쳐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집에서 사무실, 천마산역에서 사무실까지 6km 정도를 걸어 다닌다. 봄이라 봄꽃이 이뻐서, 봄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연둣빛 잎이 이뻐서, 어린잎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이 또한 소중해서 가능하면 많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천마산역을 지나다 보니 천마산 탐방로라는 이쁜 기둥이 서 있다. 천마산 정상은 몇 번 다녀왔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늘 궁금했었다. 산행하기엔 늦은 감이 있지만 정상은 아니라도 길을 한번 보고 싶어 배낭을 챙겼다. 천마산역에 주차를 하고 산으로 향하는 길, 입구에 야자..

산이 좋아라! 2021.05.03

천마산

아이들과 행복한 추석을 보내고 나니 서방이 여유롭게 낚시를 가고 싶다고 벼른지라 보내버렸다(?). 혼자서 내리 사흘을 보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행복하고 평안하다. 하룻쯤은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구정에 올랐던 천마산을 오르기로 했다. 천마산을 다녀와 설설 기던 생각이 나서 깔딱고개까지만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고 나선 길, 집에서 5분거리에 있는 천마산 주차장에 들어서니 입구까지 차가 꽉꽉 채워졌다. '이번 추석은 모두 천마산에서 모이기로 했나?' 주차장 들머리에서 2 야영장까지 가는 것이 가장 힘들다. 임도이지만 자갈이 깔려 미끄러질까 조심스럽고, 보이지 않는 오르막이라 산길 보다 더 힘이 든다. 무엇보다 힘들지 않아 보이는 길이라 더 힘들다. ㅎㅎ 야영장을 지나 깔딱고개를 들어서니 오히려 임도보다 편안..

산이 좋아라! 2020.10.08

천마산 관음봉

세상이야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법으로 돌아가든지, 계절은 한치도 어김없이 제때에, 제자리에 찾아든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치유와 회복도 가져올 테니 흐르는 시간이 고맙다. 사그라들 줄 모르는 바이러스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집안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당부가 시간마다 방송국마다 노란 점퍼를 입은 분들이 쉴 새 없이 되풀이하는 것도 이젠 좀 지겹다. 집안보다는 오히려 산이 훨씬 안전한 것은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니라 산이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정확하다. 천마산에서 흐르는 중턱에 된봉과 관음봉은 내가 즐겨 찾는 산이고 길이 이뻐서 '진옥길'이라는 이름까지 달아 주었다. 지난해 어느 날, 산 중턱에 무슨 공사를 한다며 길을 막아 놓은 탓에 발길을 돌려 백봉..

산이 좋아라! 2020.09.21

호명호수

다시 찾아온 온라인 영상예배는 나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정장은커녕 입은 채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GOOD TV를 통해 이찬수 목사님과 꿈의 교회 김학중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출근체크를 하듯이 주일예배를 드린다. 주어진 하루는 길고도 넓다. 그냥 집에서 뒹굴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고 어딘가로 떠나기엔 제한된 것이 너무 많다. 코로나 2차 사태가 전적으로 기독교 탓이고 성도들과 목사님들 탓인 듯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니 이럴 때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조심함으로 이때가 속히 지나가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평내교회는 방역수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데 어느 교회 목사님은 순교의 뜻도 모르면서 목회자의 자리에서 큰소리를 친다.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인지 자신의 욕심인지를 ..

산이 좋아라! 202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