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라!

남양주시청에서 평내

여디디아 2023. 11. 3. 15:42

시청에서 시작되는 들머리

눈 감고도 올라가는 갈림길

오랜만에 약수터로
가을속에서 오카리나를 불어보고..
혼이 빠진듯...

 

 

여름이 아직도 남았으려니,  추석이 지났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여름이 좀 남았을 테고  가을은 아직 저만치서 기다릴 테고,

아직 초록은 지칠 줄 모르고 푸르뎅뎅하리라 여겼던 것은, 유난히 바쁜 날들이 나를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추석을 보내고 남편이 열흘쯤 감기로 헤롱헤롱 거려 속을 뒤집는가 싶다가 그 감기를 내게 떠넘기고는 훌쩍 일본으로 날아가고 혼자 남은 내게 일은 염치없이 시간 속에 묻혀서  쓰나미처럼 몰아쳤다.

동생부부를 불러내고 밤이고 새벽이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마음이라기보다는 고객들의 영업에 지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다.

어느 날은 추워서 이미 겨울인가 싶다가, 어느 날은 맞춤한 날씨가 가을인가 싶다가, 어제는 여름인가 싶어 다시 선풍기를 틀다가 두서없이 허둥거리다 보니 어느새 11월에 서서 마른 나뭇잎처럼 서걱거리는 나를 본다,

 

모처럼 어제아침 가을산이 보고 싶어 출근시간을 이용하여 남양주시청에서 평내로 넘어오기로 했다.

선집사가 이번주 바쁘다길래 혼자서 슬쩍 다녀오기로 하고 남양주시청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줄잡아 몇십 번은 넘어온 길이다.

혼자서 걸어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46번 경춘국도가 환하게 보이는 길이고 심심찮게 등산객을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버하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되는 길이다.

어느 굽이를 돌면 진달래가 몇 송이가 어우러져 피고 어디쯤엔 마른가지가 비칠거리고, 어디쯤엔 태풍으로 쓰러진 소나무가 껍질을 벗기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고, 돌멩이가 차이고 바위가 나를 기다리는 곳을 알고 있는 길이다.

 

산행을 시작하고 생각하니 물병을 챙기지 않았다. 

핑곗김에 깔딱 고개 대신 오솔길을 선택하고 약수터에서 미리 물을 마시자는 생각으로 편안한 길을 선택했다.

모기가  반가이 맞이하는 약수터에서  물을 들이켜고 나니 단풍이 고운 낯선 산길이 나를 자극한다.

어느 길을 택하든 '뻔한 길'임을 알기에 '낯선 길'을 택하여 올랐다.

한참을 오르니 색이 고운 단풍나무와 수북한 낙엽과 엉덩이를 받쳐줄 안성맞춤한 돌방석이 나를 기다린다.

석 달째 배우고 있는 오카리나를 꺼내 아무도 없는 산에서 마음껏 불어 제쳐 보는 자유를 10분간 만끽해 봤다. ㅋㅋ

그리고는 짐작을 하고 '평내로 가려니..'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아뿔싸...

 

아무리 둘러봐도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거기다.

짐작컨대 '거기리라' 여기며 다시 깔딱 고개를 올라 벤치에 앉으니.. 맙소사.. 최소한 50번은 올라왔던 깔딱 고개의 그 벤치이다. 어이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도깨비한테 홀린듯하다. 

평내로 가려면 2시간을 걸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서 다시 내려와 버스를 타고 평내로 왔다.

평소 길치이기도 하지만 산에서 길을 잃으면 정말 대책이 없다.(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늙어가는 것일까.

말도 나오질 않는다.

기가 찬다.

 

이러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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