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라!

천마산 관음봉

여디디아 2020. 9. 21. 11:50

천마산 계곡

 

천마산을 배경으로

 

 

세상이야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법으로 돌아가든지, 계절은 한치도 어김없이 제때에, 제자리에 찾아든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치유와 회복도 가져올 테니 흐르는 시간이 고맙다.

사그라들 줄 모르는 바이러스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집안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당부가 시간마다 방송국마다 노란 점퍼를 입은 분들이 쉴 새 없이 되풀이하는 것도 이젠 좀 지겹다.

 

집안보다는 오히려 산이 훨씬 안전한 것은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니라 산이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정확하다.

 

천마산에서 흐르는 중턱에 된봉과 관음봉은 내가 즐겨 찾는 산이고 길이 이뻐서 '진옥길'이라는 이름까지 달아 주었다.

지난해 어느 날, 산 중턱에 무슨 공사를 한다며 길을 막아 놓은 탓에 발길을 돌려 백봉산으로 향했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 정상까지는 아니어도 중턱인 노루목까지는 부지런히 다녔는데, 보이지 않는 건강은 더해졌는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몸은 여전히 강건하다 못해 스트레스이다.

입맛 당길 정도의 운동만 했나??

 

산을 좋아하는 준경이와 시간을 맞추기는 어렵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당직에, 친구들과 약속에, 매월 어김없이 아파주는 생리통으로 인해 한가한 이모와의 시간을 맞대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하고 관음봉을 올랐다.

 

분명 서너번은 같이 온 것 같은데 준경이는 처음 보는 산인 듯이,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전날 밤, 준경이 몰래 하나님께 좋은 날씨가 필요하다고 빽을 쓴 듯이 날씨는 맑고 쾌청하고 릴케의 시처럼 남은 여름 햇살은 장마와 태풍도 이겨낸 마지막 곡식의 알곡에 영양분을 더하고 따가운 햇살 위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엔

알싸한 국화향이 묻었다.

 

높게 얹힌 가을하늘과 가을바람과 오붓한 오솔길, 새소리처럼 재잘되는 준경이가 내는 맑은 목소리,

가벼운 몸으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준경일 따라잡는 내 입에선 연신 헉헉대는 아줌마의 가뿐 숨소리가 쏟아진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가을볕이 스며 어느새 가을을 향하여 내달리는 자연의 모습이 마치 늙어가는 내 모습 같아서 연민을 느낀다.

 

카메라로 인증샷을 하고 좋은 경치를 담기에 바쁜 준경이를 보니 가을 하늘처럼 푸르른 청춘이 아름답고 이쁘다.

한 점 부끄러움 없을 것 같은 청춘 위로 형통한 길이 펼쳐지면 좋겠다.

살다보면 어려움도 있고 힘든 날도 있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도 다져졌으면 좋겠다.

딸이 없는 나를 위해 마음 쓰며, 며느리들을 위한 시어머니의 역할을 응원해줌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슬몃 알려주는지혜로운 마음이 고맙다.

 

요즘 나의 식탁을 준경이가 끼니 때마다 관리하고 있다.     

아산병원의 환자들 식탁을 돌보듯이 혹시라도 이모의 건강에 적색신호가 켜지기 전에 관리가 필요하다며 귀찮은 내색 없이 케어하는 준경이가 있어서 참 좋다.

 

관음봉이 얼마나 좋았던지 돌아오는 토요일에 다시가자는 문자에 입이 벙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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