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소 쩍 새 윤 제 림(1959~ ) 남이 노래할 땐 잠자코 들어주는 거라. 끝날 때까지. 소쩍.... 쩍 쩍.... 소ㅎ쩍... ㅎ 쩍 ...... 훌쩍...... 누군가 울 땐 가만있는 거라 그칠 때까지. ----------------------------------- 솥이 적어서 소쩍 소쩍 운다는 소쩍새의 이야길 초등학교때 들었다. 유난이 턱이 뾰족하고 은근히 웃으.. 시가 있는 아침 2006.05.24
젊은 사랑 - 아들에게 젊은 사랑 - 아들에게 문 정 희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분 살고 계시나 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나는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탕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 시가 있는 아침 2006.05.11
수묵정원 9 -번짐- 수묵정원 9 번 짐 장 석 남(1965~ )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 시가 있는 아침 2006.04.26
오 늘 오 늘 구 상(1919~2004)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 시가 있는 아침 2006.04.14
봄 봄 이 성 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시가 있는 아침 2006.04.06
봄 밤 봄 밤 정 호 승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의 날을 기억하는 날들, 어디선가 부시시 부시시 .. 시가 있는 아침 2006.04.06
초 봄 초 봄 정 완 영(1919~ )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 맑고 투명한 봄날의 아침에, 때론 한낮의 때에, 긴 장대를 받쳐둔 빨랫줄에 참새들이 나란히 앉아 있던 모습, 참새의 옆자.. 시가 있는 아침 2006.04.01
산수유나무의 농사 산수유나무의 농사 문 태 준(1970~ )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 시가 있는 아침 2006.03.31
톡 톡 톡 톡 - 중에서 류 인 서(1960~ ) 그 여자는 매니큐어 바르기를 좋아한다 (중 략) 엄지발톱에 톡, 톡, 매니큐어를 바른다 그래, 톡 톡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겠다 톡톡, 메밀밭 메밀꽃이 하얗게 트이는 소리 톡톡, 호박잎 위에서 배꼽달팽이 발가락 펴는 소리 톡톡톡, 등푸른 오이가 칼날 위를 뛰.. 시가 있는 아침 2006.03.15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를 보면 문 정 희(1947~ )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다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 시가 있는 아침 200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