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가 있는 아침 가 구 - 중에서 도종환(1954~ )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가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 시가 있는 아침 2006.08.01
음 악 음 악 이 성 복(1952~ ) 비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놓는다. ----.. 시가 있는 아침 2006.07.28
토막말 시가 있는 아침 정 양 (1942~ )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죽껐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 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 시가 있는 아침 2006.07.21
서울 사는 친구에게 서울 사는 친구에게 안도현(1961∼ )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뜨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는가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 시가 있는 아침 2006.07.08
세상살이 20 - 겸손과 오만 세상살이 20 -겸손과 오만 김 초 혜(1943~ ) 언제나 남보다 앞서기를 좋아하고 계획한 일은 초과 달성해야 하고 완벽한 집념을 가진 까다로운 성미는 마침내 허리를 휘게 해 편한 걸음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한 달만 치료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조금치도 염려 말라는 지압사는 내 자만심이 허리를 휘게 .. 시가 있는 아침 2006.07.04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마라. 서로의 빵을 .. 시가 있는 아침 2006.06.26
몸 詩 66 - 병원에서 몸詩 66 - 병원에서 정 진 규(1939~ ) 몸이 놀랬다 내가 그를 하인으로 부린 탓이다 새경도 주지 않았다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제 끼에 밥 먹고 제때에 잠자고 제때에 일어났다 몸이 눈떴다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 ------------------------------------------ 초록이슬님이 그랬다. 마흔이 되면 몸이 말을 한다고.. .. 시가 있는 아침 2006.06.08
평상이 있는 국수집 시가 있는 아침 문 태 준(1970~ ) 평상이 있는 국수집에 갔다 붐비는 국수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 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 시가 있는 아침 2006.06.02
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고 재 종(1957~ ) 사과꽃 환한 길을 찰랑찰랑 너 걸어간 뒤에 길이란 길은 모두 그곳으로 열며 지나간뒤에 그 향기 스친 가지마다 주렁주렁 거리는 네 얼굴 이윽고 볼따구니 볼따구니 하도나 빨개지어선 내 발목 삔 오랜 그리움은 청천(靑天)의 시간까지를 밝히리 길이란 길은 .. 시가 있는 아침 200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