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 양 (1942~ )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죽껐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 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심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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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하다.
대책없이 아름답다는 이 한마디가 공평치 않은 세상살이를 여실히 알린다.
시인의 마음을 통과한 욕설은 아름다움이 되고
평범한 사람의 입에서 뱉어질 때는
다시금 얼굴을 쳐다보는 더러운 오물이 된다는 사실은 공평치 않다.
여름이 시작한 날이라 들뜬 기분으로
망상해수욕장으로 달려가는 세현이를 보고
피해가 속출하여 눈물까지 삼키는 이들의
피를 토하는 모습을 돌아보라고 말할 뿐이다.
"내가 지금의 너라면 친구들과 함께 이웃을 돌아보기 위해 짐을 꾸리겠다"고 하는
나를 무심히 쳐다보던 세현인 지금쯤 망상해수욕장을 향하여
고래같은 소리를 지르며 노래하리라.
젊음을..
삶을 ..
사랑을..
물론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우리집 벽에 대문짝만씩하게 쓰려다 참았노라고
지워지지 않는 매직으로 쓰려다 참았노라고..
작은 연필로
'소리야 사랑해!!'라고 썼다던데..
무심한 세월이 소녀에서 아가씨로,
아가씨에서 처녀로,
처녀에서 새댁으로,
새댁에서 아줌마로,
아줌마에서 완벽한 아줌마로 변하는 이 시간들처럼
내 감정도,
내 마음도 무뎌졌나보다. 확인치 못했으니..ㅉㅉ
여름바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벌써 가을바다라니..
폭염 사이로 살며시 들어설 가을의 자리를 미리 맛보기 싫은건
빈 좌석을 보면 뛰어갈 아줌마가 될까봐
지레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다음번 친정길엔 벽을 샅샅히 뒤지리라.
씨펄이면 어떠리.
한때는 나도 이런 고백을 들었노라고..
지금도 듣고 살아가고 있노라고
큰소리 한번 빵빵하게 질러 볼테니...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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