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서울 사는 친구에게

여디디아 2006. 7. 8. 10:49

 

 

 

서울 사는 친구에게

 

안도현(1961∼ )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뜨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는가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이리로 한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 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잔 먹세

어깨를 잠시 꽃게처럼 내리고, 순대국이 끓는

중앙시장 정순집으로 기어들 수도 있고, 레테라는 집도 좋지

밤 12시 넘으면 포장마차 로진으로 가 꼼장어를 굽지

해직교사가 무슨 돈으로 술타령이냐 묻고 싶겠지만

없으면 외상이라도 하지, 외상술 먹을 곳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 아니던가

갑자기 자네는 부담스러워질지 모르겠네, 이름이야 까짓것

개똥이면 어떻고 쇠똥이면 어떻겠는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오기만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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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과 함께 기차여행을 하던 날,

이른새벽에 잠에서 깨어

한영분집사님이 주신 유정란 8개를 삶고

'산수정' 이란 물병에 꽁꽁 얼린 물을

동생이 준 까만 가방에 넣었다.

카메라와 함께..

 

기차안에서 안도현시인과 함께 앉아 김제로 향하던 길에

지평선이 기다리고 김제평야가 길게길게 기다리고

모내기가 끝난 논으로 하늘이 내려와 앉은 모습을 보았고

안도현시인이 쓴 시를 노래로 부르며

손뼉을 치며 소리내어 웃기도 했었다.

 

술 한잔을 마시면

길게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술 두잔을 마시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술 석잔을 마시고나면

아무데서나 드러누워 잔다는 그..

 

원광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

전교조에 가입하여 해직교사가 되고

해직하고 난후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던 건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일년에 수필을 2000편 정도 썼다며

장난끼 가득한 모습으로 웃던 시인..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마주하며 웃었던 웃음들..

 

나는 벌써 그가 그립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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