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평상이 있는 국수집

여디디아 2006. 6. 2. 13:42

 

 

 

시가 있는 아침

 

 

문 태 준(1970~     )

 

 

 

평상이 있는 국수집에 갔다

붐비는 국수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 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일을 손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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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몸을 미끈하게 드러내는 왜국수,

도대체 그놈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가..싶어

동생들과 어깨를 맞대고

손을 맞대고

눈을 맞대고

고개를 치켜들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며

국수의 키 맞춤하던 유년의 때,

 

엄마는 하얗고 미끈한 왜국수를 좋아하셨고

동생들도 매끄럽고 졸졸 넘어가는 왜국수를 좋아했었고,

아버진 면발이 굵고 두툼하며

엄마의 손이 몇번씩이나 수고를 했어야 했던

투박한 칼국수를 좋아햐셨고

나도 아버지처럼 칼국수를 좋아했었는데..

 

간편한 왜국수를 먹자고 하는 엄마앞에서

끝까지 칼국수를 고집하던 아버지가

어찌나 든든했던지.

 

평상을 펴놓고

것두 모자라 가마떼기를 펼쳐놓은 채

고춧가루, 풋고추, 칼등으로 짓이긴 마늘,

고추밭에서 뽑아온 알큰한 파를 섞어 만든

양념장을 끼얹어 먹던 국수맛이란..

 

쯧쯧쯧쯧 쯧쯧쯧쯧,

 

가난한 시골집의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

갓을 쓴 호야아래로 모기가 날아들고

검은 그을음위로 파리가 덤벼도

설겆이통 물에 몇번씩의 그릇이 담겼다 빠져나와도

전혀 비위생적이지 않았고

더럽지 않았던 그때,

 

칼국수를 좋아하신 아버지도

왜국수를 좋아하신 엄마도

지치도록 지치도록

가난했었을텐데..

 

가난이어도 좋고

옹골진 궁상스러움이라도 좋고

문명의 혜택으로 컴퓨터가 뭔지

블러그가 뭔지 몰라도 좋으니

다시금 평상에 앉아 서러운 눈빛을 감추며

피곤에 지친 몸을 잠시 잊은채

 

왜국수를 하느니..

칼국수를 하라느니..

투닥거리는 부모님의 사랑싸움이나 볼 수 있으면..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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