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산수유나무의 농사

여디디아 2006. 3. 31. 09:48

 

 

 

 

산수유나무의 농사

 

 

문 태 준(1970~         )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

 

노란 좁쌀이 흩어진 모양으로

어쩌다 나뭇가지에 걸쳐진 황사로 여겨지는 먼지같은 꽃,

한번도 꽃이라 불러주지 않았음이 미안해서

두해전에 양평으로 산수유꽃 축제엘 갔었다.

 

꽃이라 이름붙여주고 싶어서,

꽃이라 인정하며 꽃이라 여겨주기 위해.

 

군락을 이루며 듬성듬성 어우러진 산수유나무,

산수유꽃 알갱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무리,

나른한 시골골목 모퉁이로 졸음이 찾아들고

꽃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두 눈에도

봄볕과 함께 여지없이 찾아들던 졸음,

 

고개를 들어 산수유꽃을 바라보니

아예 잠이다.

꽃을 보며 졸음을 느끼게 하는 야릇한 꽃,

산수유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이 노랗기 때문에

꽃은 의식속에서 잠을 데려오는걸까?

 

산수유나무가 농사를 시작했단다.

그늘종사를..

열매농사를 해도 죽을둥 살둥 바둥거리는 세상에

그늘농사라니..

산수유나무의 팔자가 늘어진 팔자가 아닌가 말이다.

 

칠십리길을 산수유꽃이 늘어지게 폈다는데

전라도 구례땅에 봄맞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졸음처럼 밀려드는 산수유꽃을

봄볕 쏟아지는 낯선 골목에서 만날수 있다면..

 

참아야 하느니...

(진옥이의 한마디!!)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밤  (0) 2006.04.06
초 봄  (0) 2006.04.01
톡 톡  (0) 2006.03.15
키 큰 남자를 보면.  (0) 2006.03.06
이른 봄  (0) 200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