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정원 9
번 짐
장 석 남(1965~ )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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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봄산에 산벚꽃이 조용히 번져
연둣빛 봄동산을 희븀한 안개로 덮었다.
하얀 습자지 위로
잘못 튕겨진 물감의 번짐처럼
슬픔은 스미듯이 번져 주위를 온통
물 먹은 눅눅한 공기로 가득 채운다.
모호한 회사내의 분위기가 슬픔같은 분노로 번지고
알력을 자랑하는 성도들의 힘셈이
거친 숨결로 텃세로 번져
아무것도 모르는 성도들을 서성이게 하고
뒤돌아서 이웃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한다.
억지같은 슬픔이,
문득 봄밤을 서럽게 만드는 묘한 들쑤심이
내 몸을 번져 가족들에게까지 스미게 하고..
이상도 하다.
기쁨은 한방에 날아가는 홈런처럼 퍼져나가는데
슬픔은 눅눅한 안개처럼 조용히 번져 가는걸까.
삶이 번져 죽음이 되고
죽음이 번져 삶을 환하게 비추는 오늘..
화장터를 향하는 젊은 남자의 허전한 죽음앞에서
내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도
죽음이 번진 슬픔탓이리라.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