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183

호미곶

부모님 산소엔 이미 봄이 지나고 있다. 얼마 전 동생이 갔을 땐 산소 입구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했는데 금새 벚나무엔 잎이 팔랑거리고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철쭉과 작은 라일락은 보랏빛 꽃을 피웠다. 나뭇가지에서 일렁이는 연둣빛 어린 잎들이 참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이고, 딱 그즈음이다. 산소에 들렀다가 포항으로 향했다. 친정에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포항엘 여행을 가본 적 없으니 어쩐지 미안함 마음이다. 몇 년 전에 잠시 들렀던 호미곶이 세월 따라 확 바뀌었다. 바닷물에 푹 잠겨 있던 상생의 손도 바지를 걷어 들어가면 만져볼 듯 가깝고, 새천년 광장은 어쩐지 신천지를 떠올리게 해 언짢다. 호미곶에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 멋지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중에서도 2코스가 멋지다는 말은 ..

기행문 2021.04.20

안돌밧돌오름 /비밀의숲

제주도에는 알려진 오름만 368개라고 한다. 수많은 오름 중에서도 콕콕 찍어서 가보고 싶은 오름이 있다. 오름의 작가 선정 씨 영향이다. 오름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사진을 보면서 꼭 가고 싶은 오름을 마음이 먼저 찜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은 작가가 적극 추천하는 오름이기도하고 혼자 가는 것보다 친구랑 가서 아름다움을 나누라는 글을 보고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은 오름을 저장해 놓기도 했다. 지난번 서방과 왔을 때 가고 싶었는데 맞은편 거슨세미오름 둘레길을 먼저 탐방하면서 주특기인 길을 잃음으로 더 이상 권유하지 못한 채 끙끙 앓던 곳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1박 2일을 알차게 보내려는 마음에 안돌밧돌을 탐방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의 유채꽃, 델문도의 커피를 마시겠다고 생각했..

기행문 2021.04.09

생이기정길

봄꽃이 피어나는 속도에 맞추어 움츠린 것 같았던 코로나도 고개를 쳐든다. 제주도를 오가며 이용했던 진에어에서 포인트가 쌓여 12일까지 이용하지 않으면 점수가 줄어드는 사실을 핑계로 다시 제주행 티켓을 끊고 코와 입을 쑤셔 코로나 검사를 했다. 선집사와 민경이와 문정은집사가 함께하기로 약속을 하고, 티켓을 예약하고 렌터카를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을 하늘에 예약하며 하루하루를 기다렸는데, 살아가는 일이 계획표대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나마는 비틀어지고 구겨지고 헝클어지는 것이 인생살이의 모습이다. 함께하기로 약속한 세명이 맏며느리이고, 그에따른 책임감과 의무감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신뢰를 쌓게 함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 문집사가 변명할 수 없는 이유를 퍼부으며 미안한 마음을 담아..

기행문 2021.04.09

붉은오름

사려니숲과 등을 맞대고 있는 붉은 오름이다. 368개의 오름이 각각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처음엔 올레길에 미쳐서 제주도를 들락거리다 다랑쉬오름을 오른 후 오름에 빠졌다. 제주도엘 가면 유명 관광지나 박물관이나 잠수함이나 뭐 그런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붉은오름은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하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휴양림은 입구에서부터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어르신들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어린이가 걸을 수 있는 길,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오를 수 있는 오름이 있어서 누구나에게 환영받을 수 있다. 붉은오름에 도착을 하니 내 입이 헤벌쭉해진다. 안 돌 밧돌 오름을 참은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서방도 씩씩한 척, 즐거운 척, 힘이 안 드는 척을 하는가 하면, 오름..

기행문 2021.03.04

제주 안녕, 전복과 라마다시티호텔

교래칼국수를 먹고 비자림으로 향했다. "나랑 오면 한라산이나 남벽분기점 같은 힘든 곳으로 가고, 청안 이씨들이 오면 비자림이니 마라도니 편안한 곳으로만 가고..."라며 툴툴대던 서방이 생각나서 이번엔 남벽도 포기하고 편안한 여행을 하기로 착한 내가 마음 먹었는데... 점심시간 후 비자림을 갔더니 '코로나로 인해 한정된 시간만 입장한다' 며 오늘 입장은 끝났다는 소식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희연 동굴카페로 네비에게 부탁을 했는데 엉뚱한 곳에 데려놓는다. 다시 검색하고 다시 검색하고 또다시 검색해도 여전히 엉뚱한 곳이라 오름을 참은 내 속을 다시 뒤집는다. 오후를 포기하고 일찍 호텔로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나섰다. 미리 검색하고 간 안녕, 전복은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고 ..

기행문 2021.03.04

거슨세미오름

송구영신예배라고 하지만 모일 수가 없어서 영상예배로 드렸던 2021년 1월 1일 첫 시간, 예배시간이 되기까지 졸려서 '예배를 드릴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예배를 마치자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올해부터 받게 되는 국민연금, 270번을 부었지만 받는 돈은 푼돈이고 누군가에겐 껌 값이다. 그렇더라도 오래도록 부은 국민연금을 받을 생각을 하니 설렌다. 시어머니로부터 여자 생일이 1월이라고, 끝에 8자가 들었다고 몇 번이나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1월 생일이 이렇게 좋은 날이 올진 나도 몰랐고 나를 있게 해 주신 엄마 아버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새 달력을 보니 생일이 3월 1일, 내 생일이라고 온 국민이 공휴일로 정해서 쉴 수 있다니 어쩌자고 또 반갑다. 이런 의미 있는 날을 그냥 보내면 섭섭하고 세금..

기행문 2021.03.03

북한강자전거길 (가평역~굴봉산역)

설이라고 하지만 가족이 모일 수 없는 설은 허전하고 쓸쓸하다. 지유네가 와서 하룻밤을 지내고 늦은 아점을 먹은 후 금남리 아쿠아 룸카페에 들렀다가 친정으로 간다고 떠난 자리엔 알 수 없는 빈 울음이 나를 울컥하게 한다. 쉬겠다는 서방을 둔채 혼자 백봉산을 향했는데 몇 년을 지나면서 가보지 않았던 낯선 길을 따라갔다. 고래산 누리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갔더니 멀지도 않고 길도 험하지 않아서 좋다. 수리재 너머란 목적지에 도착하니 가끔 자동차를 타고 지나던 고개 앞이다. 서늘한 설을 보내고 다음날, 어제 등산으로 인해 다리가 뻐근하여 상천에서 가평은 10킬로 이상이라 다음으로 미루고 가평에서 굴봉산역으로 걷기로 했다. 마석역에서 탑승한 전철은 25분 후 가평역에 우리를 내려준다. 가평역에서 내리니 역시 자전..

기행문 2021.02.15

북한강 자전거길(청평역~상천역)

경춘국도 자전거도로는 북한강 자전거길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이렇게 잘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제주올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올레꾼들이 안심하고 제주도를 걸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처럼 자전거도로 역시 라이더들이 안심하고 달릴 수 있도록 신호체계와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주말이지만 코로나 탓인지 라이더들이 별로 많지가 않아서 자전거길이 빛을 잃은 듯하다. 지난주에 대성리에서 청평까지 걸었으니 이번 주엔 청평에서 상천역까지 걷기로 했다. 청평과 상천 그리고 춘천까지는 평소에 자주 드나드는 길이어서 큰길과는 떨어져 있지만 어디쯤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어서 낯설지가 않다. 청평에서 상천까지는 6.1km 청평에서 시작할 때 자전거길 안내표지가 없어서 당황했고, 스스로 찾아보기보다는 묻는 걸 좋아하..

기행문 2021.02.08

한라산을 가다

백록담 속밭 대피소 코로나 19는 나를 지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고, 단념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24시간 같이 지내는 서방과의 사이도 한계를 느껴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과 쳐다보면 짜증스럽고 말소리도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한 지가 좀 되었다.. 10월 중순에 만난 친구들과 제주도엘 가자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예매를 하고 한라산을 찍었다. 한라산을 오른다는 생각으로 열흘간의 시간은 스트레스 대신 설렘으로 바뀌었고, 순간처럼 다가온 20일은 가을볕처럼 따사롭다. 첫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남양주에서 공항 첫 버스가 위태롭고, 다음 비행기를 타기엔 만원 한 장을 얹어야 하는 것이 몹시도 아깝게 느껴진다. 결국은 서방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아무래도 나와 마찬가지로 긴긴 시간들이 답답하고 갑갑하여 숨..

기행문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