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산소엔 이미 봄이 지나고 있다.
얼마 전 동생이 갔을 땐 산소 입구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했는데 금새 벚나무엔 잎이 팔랑거리고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철쭉과 작은 라일락은 보랏빛 꽃을 피웠다.
나뭇가지에서 일렁이는 연둣빛 어린 잎들이 참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이고, 딱 그즈음이다.
산소에 들렀다가 포항으로 향했다.
친정에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포항엘 여행을 가본 적 없으니 어쩐지 미안함 마음이다.
몇 년 전에 잠시 들렀던 호미곶이 세월 따라 확 바뀌었다.
바닷물에 푹 잠겨 있던 상생의 손도 바지를 걷어 들어가면 만져볼 듯 가깝고, 새천년 광장은 어쩐지 신천지를 떠올리게 해 언짢다.
호미곶에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 멋지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중에서도 2코스가 멋지다는 말은 티눈을 빼내어 아직 성치 못한 내 발을 내딛게 만든다.
지난 화요일, 발가락에 났던 티눈이 점점 커져서 걸을 때마다 불편하고 통증이 느껴져 마석 이종원 피부과에서 티눈을 제거했다. 서방이 제발 그만 걸으라고 인상을 구기지만 콧등으로 지나는 바람처럼 들린다.
예전에도 한번 제거한 적이 있는데 (그땐 발바닥이다) 세현이도, 준후도 그 병원에서 티눈을 제거한 경험이 있을만치 마석에서 오래된 병원이다.
일주일 동안 물에 닿지 말라고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싶어하는 발과 다리와 엉덩이와 꿈틀대는 뱃속의 내장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는...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흥환분교까지 2코스를 확인한 뒤, 흥환 분교로 가는 중에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텅 빈 주차장이 먼저 눈에 들어와 주차를 하고 출발했다.
바닷가에 데크로 길을 만들어 놓아 바닷물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고 들이치는 파도를 향해 환하게 웃어볼 수도 있는 것이 바닷길의 매력이며 묘미이다.
제주도의 바다와는 다르고 강원도의 바다와도 어쩐지 다르다.
정동진 부챗길이나 울릉도의 행남 해안길과 비슷하지만 걸을 때마다 새롭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내장까지 흔들어 놓는다. 포항의 바다는 다른 곳보다 미역이나 톳이 많다.
바닷가 근처 구룡포 마을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계신다고 한다.
멸치를 잡아서 햇볕에 말리는 손길 위로 그을린 피부색이 고단함을 나타낸다.
마을이 공동으로 작업하여 수익을 얻는 곳인가 보다.
멸치를 말리는 곳을 들여다보자니 사라고 권한다.
꾸덕꾸덕한 멸치 한박스를 사는데 아저씨들은 조금이라도 더 집어넣으려고 하고, 아줌마들은 그런 아저씨들의 손을 거절하지만 결국 더 주시려는 손에 사랑이 담김으로, 사랑이 승리한다.
멸치 한박스를 샀는데 거의 두 박스 수준이라 마음이 부요해진다.
멸치를 먹을 때마다 그분들의 수고와 노고가 느껴질 것 같다.
어디를 가든지 주민들이 판매하는 것은 꼭 사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2kg의 멸치박스를 안고 오는 서방의 얼굴은 아침을 굶었지만 시어머니 상이다.
호텔 근처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문을 연 곳이 없어서 아침을 굶식 했기 때문이다.
가방에 들었던 필희가 준 과자와 지유를 주기 위해 준비했던 과자를 먹어도 건너뛴 밥의 자리는 비어 있으니...
한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니 거의 100미터 뒤에서 서방이 나를 부르는 소리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깨닫는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야 해"를, 그러지 못함을 울면서 후회한다.
해안둘레길의 맹점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흥환 분교까지 가지 못한 건 배고파 인상 쓰는 서방 때문이 아니라 티눈을 제거한 발가락 때문이다. ㅋㅋ
왕복 7.5km를 걸으니 2시간 반이 지났다.
군데군데 돌길을 지나고 자갈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디다.
호미곶에 도착해 월녀해물포차에서 돌문어 칼국수를 먹었다.
시원한 국물이 처음 맛보는 것이라며 칼국수를 좋아하는 서방에겐 홍합과 가리비, 대게 다리에서 나오는 살을 발라주고
나는 그냥 문어만 먹었다는... 쫄깃한 돌문어의 맛이라니...
'집 떠나면 개고생'
그 말이 맞는 것은 집으로 오는 길이 너무나 밀려서 6시간 이상이나 걸렸다는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집만 떠나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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