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한 송이에도 박하사탕에서 퍼옴 들꽃 한 송이에도 전 동 균(1962~ ) 떠나가는 것들을 위하여 저녁 들판에는 흰 연기 자욱하게 피어 오르니 누군가 낯선 마을을 지나가며 문득, 밥 타는 냄새를 맡고 걸음을 멈춘 채 오랫동안 고개 숙이리라 길 가에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도 ---------------------------.. 시가 있는 아침 2009.09.25
편지 편 지 김 남 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 시가 있는 아침 2009.09.10
신 귀거래사 신 귀거래사 이 선 균(1961~) 몽둥이 칠 때마다 조여드는 목줄 빼문 혓바닥 속 타들어가는 비명 털썩, 지상으로 떨어진 몸뚱이 기우뚱 안개 숲 속으로 도망간다 흰죽 같은 안개 시지근한 죽 냄새 허기 후벼 팔 때 아아, 비틀거리는 외로움 살기 위해 다시 돌아온 집 마당 습관의 몸짓으로 빈 그릇 핥는다 .. 시가 있는 아침 2009.07.14
여름도 떠나고 말면.. 여름도 떠나고 말면 정 완 영(1919~ ) 번개 천둥 비바람도 한 철 잔치마당인데 잔치 끝난 뒷마당이 더욱 적막하다는데 여름도 떠나고 말면 쓸쓸해서 나 어쩔꼬 무더운 여름 한 철 나를 그리 보챘지만 그 여름 낙마(落馬)하고 텅 비워둔 하늘 아래 푸른 산 외로이 서면 허전해서 나 어쩔꼬 ----------------------.. 시가 있는 아침 2009.07.07
해 지는 쪽으로 해 지는 쪽으로 박 정 만(1946-1988)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 나머지 없는 저쪽 산마루.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 1. 해는 어느 쪽에서 떠 오르는가요? ( 오른쪽 ) 작대기 세개를 드높이 달고 집으로 올 D-day 가 300일 안으로 .. 시가 있는 아침 2009.06.10
기억하는가 (카라님의 종이꽃.. 전역한지 한달된 예비군이 엄마에게 선물한 꽃) 기억하는가 최 승 자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그날 환희처럼 슬픔처럼 오래 큰물 내리던 그날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 시가 있는 아침 2009.03.20
수묵정원9 - 번짐- 번 짐 장 석 남(1965~ )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 시가 있는 아침 2008.10.16
故 이청준 선생님을 추모하며... 처음으로 이청준 선생님의 작품을 읽었던 것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잔인한 도시'였습니다. 방금 교도소를 나와 하루를 유숙하면서 갇히 새를 풀어주는 어느 새장수의 집에서 돈을 받고 새를 한마리씩 새장 밖으로 내보내는 주인을 보고 주인공은 많은 생각을 했지요. 훨훨 날아가는 새들처럼, 감옥.. 시가 있는 아침 2008.08.02
청포도 청 포 도 이 육 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 시가 있는 아침 2008.07.01
옛날의 그 집 옛날의 그 집 박 경 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앗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 시가 있는 아침 2008.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