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그 집
박 경 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앗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꼐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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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0월 28일~2008년 5월 5일 오후 2시45분)
큰 별 하나가 미륵산 기슭에서 나타나
큰 별 하나가 미륵산 기슭으로 돌아가기 위해
툭 소리를 지르며 떨어졌다.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가슴에 못을 박은채 먼저 간 아들을 사무쳐하며
살아있는 순간, 숱하게 푸른 멍을 지웠을 사위와 딸을 남기고
늑대가 울고 여우가 사는 곳으로
다시 맹꽁이와 쑥쑥새와 함께 하기 위해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의 추모를 받으며
길을 나선 박경리 선생님,
'토지'를 통하여 사랑의 종류를 가르치시고
사랑의 깊이를 가르치시고
사랑의 빛깔을 가르치신 분
그로 인하여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며
부모를 사랑하며
자녀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흙을 사랑함으로
사랑으로 인해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신 분..
삼가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소서!!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