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검은머리 동백

여디디아 2008. 1. 8. 17:15

 

 

검은머리 동백

 

송 찬 호(1959~        )

 

 

누가 검은머리 동백을 아시는지요

머리 우에 앉은뱅이 박새를 얹고 다니는

동백 말이지요

동백은 한번도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지요

거친 땅을 돌아다니며,

떨어져 뒹구는 노래가 되지 못한 새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는 거지요

이따금 파도가 밀려와 붉게 붉게 그를때리고 가곤 하지요

자신의 가슴이 얼마나 빨갛게 멍들었는지

거울도 안 보고 살아가는 검은머리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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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엄마가 팔순을 맞이하셨다.

 

굽어진 허리만큼 부어오르는 얼굴,

동그란 얼굴 곳곳에 검은 꽃이 피어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손금도 보이지 않던 작은 손에는 이미 오래전에

오빠가 끼워드린 금반지가 때에 절은채 세월을 삭히고

밥의 양보다 많은 약들의 알약을 삼키며

희미하게 팔순을 맞이하신 엄마,

 

흰 앞치마에 쪽진 머리,

어느날부터 유행처럼 번진 파머머리에 유혹 당하지 않고

은비녀를 끼움으로 머리를 마무리하던 엄마,

쓸어진 부엌 바닥처럼 맨질맨질하던 머릿결,   

작은 거울을 발치에 둔채로 한쪽은 입에 물고 한쪽은 손에 들고

칭칭 엮어가던 엄마의 모습,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의 머리엔 동백기름이 친구이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다칠세라 고이 감아

참빗으로 빗고 또 빗어 넘기던 엄마의 손길은

머리만이 당신의 단장의 전부였고 유일한 낙이었을까.

쓸어내리고 빗어 넘기던 머리에

마지막으로 정성들이듯이 바르시던 동백기름,

윤기 흐르던 엄마의 머릿결이 그립고 단장하던 정성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풍성하던 머리숱이 어느새 한줌 손아귀에 허전하게 잡히는 이유일까.

 

어린 날,

다섯명의 딸들의 머리를 종종 땋아 주시던 모습,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어느날 싹둑 잘라  스텐양푼을 들이고

스텐숟가락을 들이던 그때,

아무래도 그때부터 우리집 딸들은 머리에 대한 애정이 유난한 것 같으니..

 

동생 진숙인 지금도 엄마를 위해 동백기름을 산다.

앞으로도 많은 날을, 많은 동백기름을 사서

팔순의 엄마에게 보내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은 나만이 아니리라.

 

얼굴 가득히 검은 꽃이 피어나고

손등 가득하게 검은 버섯이 피어나도

정신만은 온전한채로,

동백기름을 바르는 그 마음으로,

동백기름처럼 반질거리는 삶에 대한 애착으로

우거진 나무처럼 번성한 자녀들의 자녀들을 바라보시며

여전히 우리의 버팀목이 되심으로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계시기를

빌고 또 비는 셋째딸의 간절한 마음을  받으시기를....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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