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아침

여디디아 2007. 12. 4. 10:44

 

박치우 집사의 3남 박찬진 군

 

 

 

 

아       침

 

       

   정  현  종(1939~     )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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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풋기운이라는 말을 슬몃 내뱉으니

이 겨울아침 입에서 풋내가 난다.

너무 버무려 시커매진 열무맛도 같고

갓 솎아낸 얼가리 배추의 비릿한 풋내같기도 하고

함초롬한 이슬을 머금은 보리잎을 한잎 베어문 것도 같은..

입안에 푸르른 침이 가득하게 고여온다.

 

깊은 밤이라기에는 훤한,

이른 새벽이라기엔 아직 우유주머니가 비어있는 시간

신문배달원이 신문을 마당에 던지기도 이른 시간,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고요와 적요함이 감도는 시간

달디단 잠 속으로 세상사람들이 안식을 누리는 시간

고요와 적요를 깨트리며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운명이 아닐까,

숱한 종류의 운명속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며칠후에 팔순을 맞이하시는 친정엄마의 운명이 고요속으로 떠오르고

몇년후에 팔순을 맞이하실 시부모님의 운명이 적요속에서

커다란 떨림으로  잠자던 신경을 아침으로 바꾸는 것은

운명이 저녁이나 밤에 오기 때문일까.

 

친정엄마나 시부모님의 운명을 말하기 전에

느끼한 소리로 끙끙 앓아대는 수화기 저편의 음침한 목소리를 확인할 때면

운명을 손에 쥔 악마가 되어 번호를 찍은 손아귀를

비틀고 싶은 마음은 한켠 다행이기도 하고

한켠  잠을 뺏긴 억울함이기도 하다.

 

아침,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주어지는 아침,

날마다 나에게 선물같은 하루를 열게 하시고

운명보다는 감사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하루속에 서 있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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