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첫 눈

여디디아 2007. 11. 20. 15:45

 

 

  첫눈이 내린 다음날, 화광사의 계단과 소나무,

          첫 눈에 찍힌 내 발자욱^^* 

 

 

첫 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 정 호 승 -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은
너와 처음 만났던 도서관 숲길이다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던
버스 종점이다
아니다

버스 종점 부근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지 위의 까치집이다
아니다

네가 사는 다세대주택 뒷산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어나던 강아지 무덤 위다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었다 진 원추리의 이파리다
아니다

외로운 선인장의 가시 위다
아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소년의 똥무더기 위다
아니다

초파일 날
네가 술을 먹고 토하던 조계사 뒷골목이다
아니다

전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서 있던 명동성당 입구다
아니다

나를 첫사랑이라고 말하던 너의 입술 위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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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17층에서 휘휘 날리던 눈발은 땅위에 떨어지기 전에

나뭇가지에 머물고,

자동차의 유리창에 나붓하게 앉았고,

깔깔거리는 아이의 웃음위에 얹혔다.

 

첫눈이 내린다는 설레움보다

마티즈를 끌고 나간 아들녀석이 때가 되어도 들어오지 않아

첫눈의 반가움 대신 피 말리는 고통을 느꼈던 순간들.

그 시간들마져 흰 눈은 시름없이 폴폴 날리고

아이의 웃음위로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지고

플래쉬의 불빛따라 웃음소리가 흰 눈속에 섞여 공기중에 흩어지고.....

 

이상도 하여라.

첫 눈이 어찌하여

우리집 마당도 아니고

골목길도 아니고

넓고 너른 큰길도 아니고

예배당 십자가위도 아니고

사랑하는 이의 입술에 가장 먼저 내리는 것일까.

 

얌전하던 정호승 시인,

개그맨 이경규와 함께 부산역을 뛰어다녔다던 젊음,

운동장을 누비며 응원을 했었다던 열정,

소녀같은 웃음으로 나직하게 웃던 시인의 모습이

첫 눈과 함께 떠오른다.

시인과 함께 했던 부석사의 봄날 문학기차여행이

첫 눈을 맞은 날의 첫 추억처럼 아슴하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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