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억
문정희(1947~ )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일시에 세상이 흐린화면으로 바뀌었다
네가 남긴 것은
어떤 시간에도 녹지 않는
마법의 기억
오늘 그 불꽃으로
내 몸을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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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언제, 어느 때의 일이지?
누군가를 보내고 눈앞의 사물이 흐린화면으로 바뀌던 때,
생각보다 눈이 먼저 기억을 하여 기어이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던 때,
몸이 먼저 기억하여 찻집으로 달리던 때,
가슴이 먼저 기억하여 협심증같은 통증을 느끼던 때,
마음이 기억하여 절절한 그리움에 끝없이 헤매이던 때..
그러고보면 내 젊음의 날들은 속절없이 지나간 것인가?
아직도 푸르른 계절의 여름그늘처럼 기억으로 인하여 몸살 앓으며
기억으로 인하여 숨이 넘어갈 듯한 아픔을 느낄 가슴이 있으리라 여겼는데..
휑하게 놓여진 가슴과 헛헛한 마음의 자리엔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솔로몬의 전도서만 기억 대신에 투정처럼 뱉어지니..
정녕 내가 늙은 것인가,
가을산이 버석거리기 전에
아름다운 단풍이 사라지기 전에
시린 겨울이 채 오기전에
지나간 옛사랑을 들추어 내고
절여진 배추처럼 가슴 절이며 그리움을 토하여 내볼까나.
기억을 들추려 아무리 속을 들여다보아도
텅 빈 속에는 모든 메모리가 날아가 버리고
그리울 것도, 아플 것도 기억나는게 없으니
아무래도 나는 늙어가나 보다.
흑흑^^*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