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땅의 아들

여디디아 2006. 12. 21. 13:49

 

땅의 아들

 

고 재 종(1959~   )

 

 

 

아버지는 죽어서도 쟁기질 하리

 

죽어서도 살점 같은 땅을 갈아 모를 내리

 

 

아버지는 죽어서도 물 걱정 하리

 

죽어서도 가물에 타는 벼 한 포기에 애타하리

 

 

아버지는 죽어서도 낫질을 하리

 

죽어서도 나락깍지 무게에 오져 하리

 

 

아버지는 죽어서도 밥을 지으리

 

죽어서도 피 묻은 쌀밥 고봉 먹으리

 

 

그러나 아버지는 죽지 않으리

 

죽어서도 가난과 걱정과 눈물의 일생

 

땅과 노동과 쌀밥으로 살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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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모퉁이, 환한 햇살이 종일토록 머무는 그곳,

봄이면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소리를 들으실테고

여름이면 고춧잎이 커가는 소리를 들으실테고

가을이면 여문 콩들이 톡톡 껍질을 터트리는 소릴 들으실 아버지.

 

하얀 잔설이 무덤위로 덮이었을 지금,

앙상한 손마디와 휘어진 손가락이 시리진 않으실까.

겨울햇살이 정해진 시간만큼 머물고

햇살이 지나는 시간에 알맞게 푸른 달빛이 머무르고

달빛 사이로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만치

날이 선 바람끝은 여지 없을텐데..

 

아버진 죽어서도 물고기를 잡으실까.

아버진 죽어서도 화투를 만지실까.

아버진 죽어서도 골패를 하실까.

 

어린 딸의 뜨거운 여름방학을 냇가로 이끄시고

화투패를 뜨시며 임을 기다리시고

골패를 하시며 돌돌 말아진 카스테라를 두루마기에 품으시고

집에 오셔서 가난한 딸들을 불러 골고루 나누시던 아버지.

노랗고 까만 카스테라를 받아든 때에 절은 딸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안겨주시고

유독 막내딸에겐 덤까지 얹어주시던 아버지..

 

봄이면 지게가득히 진달래를 꺾어다 주시던 아버지

여름이면 반도와 주전자를 챙기시고 냇가로 향하시던 아버지

가을이면 탐스런 머루와 다래와 으름을

가득하게 쏟아 놓으시던 요술쟁이 같은 아버지

 

여름 가물에 물 싸움으로 치닫던 농부들의 한숨속에

홀연히 우리곁을 떠나신지 27년..

 

아직도 선연한 아버지의 웃음,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취미, 아버지의 소리...

 

21년간 아버지로서 남아주셨음이 감사하며

지금도 좋은 아버지로 남아주심이 감사합니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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