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이와 세현이가 부모님의 결혼을 축하하며 케�과 넥타이 핀을 선물했다.
리 필
이 상 국(1946~ )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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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리필..
리필이라니...
정확히 1993년 12월 28일,
여자나이 서른넷은 앙칼진 욕심이고
서슬푸른 분노이며 다부진 의욕이며 일구어낼 사랑이며
꿈을 꾸어도 좋을 미래이며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현재이기도 했으니..
그악스럽게 다물어진 입매뒤에 숨긴 마음은
유독 내 아이만은 옆 집 아이보다 달라야 한다는 강렬한 욕심이었고
시험때만 되면 유년의 아이를 책상앞에 꼼짝없이 붙들어야 하는 집착이었고
한발 앞서야 한다는 강박이었던 푸르딩딩하기만 했던 그 날들..
어느순간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물질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다부진 내 모습을 보며 세 사람을 고용하려던 사장님은
셋 대신에 나를 선택하셨고
아이들을 향한 내 강렬한 욕망은 그제야 나를 자유롭게 하고
3학년의 주현이를 자유하게 했다.
나의 서른 넷까지의 삶을 리필할 수 있다면
뒷산으로 내달리며 잠자리를 쫓던 주현이를 부르지 않을테고
팽이를 돌리던 주현이를 소리내어 부르지 않을테고
딱지치기에 여념없던 주현이를 위해 딱지를 접어줄텐데..
받침 하나를 틀렸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들고 사랑이라는 빛좋은 잣대로
어린 종아리를 때리지도 않을텐데..
그리된다면 이 순간의 가슴아픔과 마음절임도 없을텐데..
우주는 어찌 풀어 쓰고 버린 나의 생을
리필하지 못하고
다시 쓸 수 있는 새봄만을 리필하는지..
새것 같은 사랑을 리필하지 못해도
오늘 같은 내일이 리필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시한번 내 생을 리필할 수 있다면
기다리는 엄마,
인정하는 엄마,
바라보며 기도하는 엄마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오늘도 우리회사는 리필로 인하여 바쁘다.
쓰고난 토너를 회수하여 다시 분해하며 조립하며 테스트하며
새로운 제품으로 포장을 하며
어느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하여 벗겨지며
다시 글씨를 출력해낼 레이저토너들이
각각의 이름이 붙혀진채로 쌓여지고 출고되며
또다시 돌아와 우리로 인하여 리필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