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의 저녁
박 주 택(1959~ )
저 저무는 저녁을 보라
머뭇거림도 없이 제가 부르는 노래를 마음에
풀어놓고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봄비에
얼굴을 닦는다. 저 저무는 저녁 밖에는
돌아가는 새들로 문들이 덜컹거리고
시간도 빛날 수 있다는 것에 비들도 자지러지게
운다, 모든 약이 처방에 불과할 때
우리 저무는 저녁에는 꽃 보러 가자
돌아오는 마음들에 불멸을 빼앗기고
배후가 어둠인 저녁은 제 몸에
노래의 봄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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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다.
이른아침 출근채비를 마치고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끌어당긴 문(門)
열릴 것 같지 않은 굳은 모습으로
침묵하며 닫힌 문밖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봄햇살이 닫힌 문에 닿았는지,
봄바람이 닫힌 문을 훑어내리는지,
철 잊은 봄눈이 닫힌 문을 두드리는지..
단절된 공간안에서 어느새 젖고 있는건
마음이 아니고 몸이다.
봄비가 내리는 소식이면 몸 보다 마음이 먼저 젖어드는
것이 육신이 기억하는 모습임을 생각하면
감기의 시작인가,
내려간 기온 탓인가.
누군가 무심히 열고 내다보는 바깥의 모습,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울림같은 낯선 말..
'비가 내리네~'
비가 내린다는 말을 저렇게 무심하게 하다니..
비가 내리는데, 봄비가 내리는데
그 소식을 전하는 말에 반가움이 없고
달큰한 설렘이 없고 기대감이 없고
아득한 평안이 없다니..
이상도 하여라.
닫힌 공간에서 내내 젖어들던 육신이
어느새 마음보다 앞서가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새 마음보다 몸이 먼저 젖어드는 축축함이
어쩐지 서럽고 어딘가 낯설어
봄비속에 담긴 꽃눈을 잊은채
봄비속에 가득한 빗살무늬 햇살을 잊은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남으로
지나온 날만치 지나가는 육신을 발견해야하는 사실이
내리는 봄비 소리처럼 주절주절..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