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이청준 선생님의 작품을 읽었던 것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잔인한 도시'였습니다.
방금 교도소를 나와 하루를 유숙하면서 갇히 새를 풀어주는 어느 새장수의 집에서
돈을 받고 새를 한마리씩 새장 밖으로 내보내는 주인을 보고 주인공은 많은 생각을 했지요.
훨훨 날아가는 새들처럼,
감옥을 벗어난 사람들이 세상속으로 훨훨 섞이며
많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했지요.
매일 새장이 새롭게 채워지는 모습을 보며 주인이 새에게 멀리 날지 못하도록
수를 쓰고 있음을 발견하였다는...
그런 내용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마음놓고 사 볼 수 있었던 소설들,
내가 번 돈으로 서점의 한 가운데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책을 골랐을 때,
이미 부자가 되었습니다.
유년의 가난한 시절은 전과 한권을 가져볼 수 없었고 수련장 한 권을 가져볼 수 없었습니다.
읽을 거리라면 벽에 붙여진 신문조차도 읽어대고
새농민이라는 잡지조차도 읽어갔던 때..
옆동네에 사신 큰집오빠의 꽉찬 서재는 나의 소녀시절을 붙들어맨 신비한 곳이었지요.
생일이 같은 오빠의 허락을 받아 거리낌없이 드나들던 오빠의 서재엔
외국문학가들의 책이 빼곡하였습니다.
보물처럼 한권씩 가져다 읽고 다시 그 자리에 꽂았던 때부터 내 손으로 책을 고르고 싶었던
욕심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책은 나의 좋은 친구였으며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잔인한 도시'를 읽고 한번에 선생님의 매니아가 되었습니다.
이청준 선생님의 글은 깊은 맛이 느껴지고
김승옥 선생님의 글은 질긴 맛이 느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글은 저를 깊은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눈길'을 읽을 때
아들을 보내는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추운겨울에 눈길을 밟으며 떠나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사래를 치며 아들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시골에서 버스의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사래를 치며 나를 보내던 내 어머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더랬습니다.
그 모습이 선생님의 어머님의 모습이셨다지요?
물론 이후로 선생님의 글은 보이는데로,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는 가슴 한켠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직은 아닌데..'
이제 그 깊은 맛이 우러나는 글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는 슬픔,
하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돋보기를 밀어올리시는 모습을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상실감..
한국을 대표하는 좋은 소설가가 한분 줄어든다는 엄연한 사실..
수없이 이어지는 문상을 보며 마음을 다하여 국화 한 송이를 영전에 바칩니다.
오늘아침 신정일선생님은 '글은 인간 그 자체이다' 는 글에서 선생님을 애통해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영원히 우리곁에 남아서 숨 쉴 것이며
문학을 사랑하는 후학들에겐 모범이 되는 귀한 글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꿈을 키우고
생각을 넓히고, 비전을 이루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써야 할 것이 많은데 시간이 없다' 하신 선생님,
당신의 깊은 뜻을 남아있는 문인들이 이루어주실겁니다.
이젠 암과의 투병을 끝내시고 오랜지기인 김 현 선생님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시며
밀린 이야기들을 끝없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