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수묵정원9 - 번짐-

여디디아 2008. 10. 16. 11:26

번        짐

 

장 석 남(1965~  )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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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번진 그곳에 가을이 오고

가을이 번져진 자리로 단풍이 곱다.

단풍이 번지면 무서리가 내리고

무서리가 번지면 된서리가 추운 겨울아침을 데려오리라.

 

번짐,

무거운 정국,

어지러운 사회,

소생할 것 같지 않은 경제..

 

웅크리는 어깨,

얇아지는 지갑,

오무리는 옷깃,

잠그는 마음...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는 가난,

너무 가난하기에 이혼도 못한다던 젊은 여자..

 

가을이 깊어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속엔

지펴야 할 불을 걱정하며 

데워야 할 육신을 걱정하는 번짐이

가을날의 따사로운 햇살마져 회색으로 번지게 한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이 가을엔 따뜻한 마음이 번지고 번져

손을 내밀며

 마음을 나누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길 수 있는 번짐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번짐이 있어

이 겨울이 길고 지리하지 않으며

새롭게 다가올 봄날의 봄 나비 한마리를

 한낱 그리움으로만 기다리고 싶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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