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쪽으로
박 정 만(1946-1988)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
나머지 없는 저쪽 산마루.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
1. 해는 어느 쪽에서 떠 오르는가요?
( 오른쪽 )
작대기 세개를 드높이 달고 집으로 올 D-day 가 300일 안으로 꺾였다며 좋아하던 세현이가
초등학교 몇학년때이며 무슨 과목에서인지 잊었다.
시험지를 내밀며 틀린 갯수만큼 야단을 맞을 생각으로 주눅이 들었던 세현이가 내민 시험지를 본 순간,
나는 배꼽을 움켜쥐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한참동안 세현이를 놀렸던 기억..
'해는 오른쪽에서 뜬다'...ㅋㅋ
동쪽에서 둥긋이 떠오른 해가 서쪽하늘에서 뉘엿이 저무는 여름날,
해가 저문다음에도 한동안 밝은 빛이 어둠을 물리치는 낮이 긴 날에
침묵하던 논에는 모가 심어지고
꽃이 피었던 봄 과실나무엔 열매가 맺혀 익어가는 시간들..
문득 해지는 쪽으로 나를 들이밀고 싶어진다.
서산을 휘영청 넘어가는 모습이든
푸른 바다에 풍덩 빠지는 모습이든
내일 다시 떠오를 것을 앎이 아니어도
해 지는 쪽으로 나도 사라지고 싶다.
광활한 우주속으로
무심한 시간속으로
고요한 어둠속으로
그 어디든
해가 지는 쪽으로 사라지자.
오른쪽에서 떠오른 해가 왼쪽으로 저물지라도
24시간의 일상을 이유없이 그렇게
묻어보기로 하자.
찬란한 아침에
다시 떠오를 둥근 태양을 품에 안고서.
(진옥이의 한마디!!)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 귀거래사 (0) | 2009.07.14 |
---|---|
여름도 떠나고 말면.. (0) | 2009.07.07 |
기억하는가 (0) | 2009.03.20 |
수묵정원9 - 번짐- (0) | 2008.10.16 |
故 이청준 선생님을 추모하며... (0) | 2008.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