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떠나고 말면
정 완 영(1919~ )
번개 천둥 비바람도 한 철 잔치마당인데
잔치 끝난 뒷마당이 더욱 적막하다는데
여름도 떠나고 말면 쓸쓸해서 나 어쩔꼬
무더운 여름 한 철 나를 그리 보챘지만
그 여름 낙마(落馬)하고 텅 비워둔 하늘 아래
푸른 산 외로이 서면 허전해서 나 어쩔꼬
-------------------------------------------------------------------------
마당 귀퉁이에 서 있는 살구나무가 하얀꽃을 피움으로 봄을 알리더니
어느새 노란살구가 말랑말랑해져 달콤한 맛을 선사하고
도무지 자랄 것 같지 않던 접시꽃이
분홍으로. 빨강으로, 하양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걸 보니
여름이다.
잔칫집 같은 여름이다.
빨간 자두가 익어가고
종이에 덧싸인 복숭아가 굵어지고
밤꽃이 진 자리에 악세사리같은 밤송이가 열리고
봉선화가 피어나는걸 보니
잔치가 한창인 여름이다.
일년에 한번인 휴가날짜를 고르는 즐거움,
함께할 사랑하는 이들의 날짜를 기다리는 일,
휴가갈 곳을 찾으며
곰곰히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는 일,
이또한 잔칫집의 메뉴중 하나가 아닌가.
4월 어느 봄날에
아들들이 제각각의 길을 가기 전에
아들들이 부모 대신 친구를 택하기 전에
아들들이 부모를 귀찮아 하기 전에
아직은 우리가 아들들을 데리고 간다는 사실에 만족할 때..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함께 보기 위하여
비행기표 4장을 예매하고
세현이의 휴가를 조절하고
주현이의 알바까지를 조절하고..
절친이신 장로님의 공무원 복지카드로 멋진 호텔까지 예약해 놓은
잔칫집의 주인인 가족여행..
여름이 가고 나면 외로움이나 허전함 대신
멋진 추억하나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마음속에 커다란 바다로 남을 것임에..
아직 여름은 시작일 뿐인 것을...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