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누운배

여디디아 2016. 8. 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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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운  배

 

이혁진 / 한겨레출판

 

제21회  한겨례문학상 수상작

1980년경북 안동 출생,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처음 '누운 배'를 선택했을 때,

당연한 듯이 팽목항 맹골수도에 멈춘 세월호를 생각했다.

우리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세월호 이야기이겠지...

 

한국의 젊은세대들이 그러하듯이 작가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수많은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쓰며 대기업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원서를 들이밀고 그러다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다가 중국에 있는 조선소에 취업을 하게 된다.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의 취업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나름대로 적응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은 인아처럼 어린아가들도 아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팀장의 전화는 자동차와 트럭 6700대를 싣고 대양을 오가는 배가 , 완공된지 일주일만에 정박장에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불과 일주일전 2001호와 2002호의 완공을 기뻐하며 대외적으로 내빈들을 불러모아 거대한 파티까지 하며 자랑을 했던 거대한 배가 쓰러졌다는, 정말 말도 안되는 현실앞에서 주인공 문기사는 황당할 수 밖에 없다.

쓰러져 누운 배를 보며 모두가 잘못의 이유를 타부서로 미루며, 어디에선가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보상심리로 가입해 놓은 보험사와의 타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던 문기사는  회사에서 서류 한장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음에 경악하고 

필요한 모든 서류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일에 또한번 경악한다.

중국인이 작성하기에는 한국말이 어렵고, 한국인이 작성하기엔 중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모든 일이 진행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필요한 서류를 위하여 단시간내에 거짓으로 모든 서류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또한 놀라울 뿐이다.

 

소설의 내용은 젊은 청년의 회사 적응기와 그의 눈에 보이는 윗선들의 실태와, 평범한 보통인들의 삶과 직장인의 애로가 잘 나타나 있다.

이사나 상무가 된 임원들은 모든 일에 말과 힘으로 짓누른다.

힘과 권력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마음대로 업체를 바꾸기도 하고, 업체를 통하여 갑의 입장에서 을을 이용하고 그러므로해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고 만연한 일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최선을 다하여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살아간다는 의지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남을 짓밟는 사람들만이 살아 남는 엄연한 현실을  민낯으로 내놓는다.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 놓는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P.99) 

 

힘 있는 사람은 문서가 필요하지 않지만 힘은 언제나 원하는 문서를 만들 수 있고 그 문서를 머리 위에 올려 놓는다.

다만 힘 없는 사람들은 없는 문서를 만들기 위하여 머리를 쥐어짜고 여기저기를 쑤시며 발품을 팔고 영혼을 판다.

힘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 양심과 노력이 아무리 수고를 하여도 결국 힘 있는 자들 앞에선 바람앞의 촛불처럼 나가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바담 風이라고 하고 양심적인 일반 사람들이 바람 風이라고 해도 역시 바담 風만이 살아남는 현실을 보며 주인공인 문기사는 절망한다.

바람 風이라고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국 회사를 나갈 수 밖에 없고, 바담 風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익숙하고 편안한 자리에서 권세를 부리는 현실을 보며 문기사는 바담 風이나 바람 風을 고집하기 전에 그저 바람 그대로를 느끼고 바라보고 싶어서 사직서를 제출한다.   

 

'어느 곳이나 바담 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이 세상이었다.

내가 있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도망쳐도 되돌아오고 그만둬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P.295)

 

어렵게 입사한 회사지만 바람 風을 바담 風으로 알아야 하는 회사는 젊음까지를 유혹하지 못했음이  감사하다.

스스로 익숙해지려던 마음을 황사장을 통해서, 정이사를 통해서, 초로의 하고문을 통하여 같은 길을 가지 않고

올바른 양심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운 배'는 바다 한쪽에 쓰러져 누운 거대한 배 한 척이 아니라 이미 권력의 맛을 알고 명예의 달콤함에 눈이 멀어

바람 風을 바담 風으로 바라보는 육신의 배가 부른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이 시간에도 직장에서 윗선의 눈치를 보며, 바람을 바담으로 몰아가는 현실 가운데 또한 스스로 닮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을 것이다. 

바람을 바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바람이라 설명할 수 없는 아픈 현실속에 내가 있고 사랑하는 아들들이 있고 딸들이 있음이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바람 風으로 인정하며 타협하지 않으며 씩씩하게 살아내어주는 '인간'이 많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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