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의 운동화
김 숨 / 민음사
"나'는 복원전문가이다.
복원이란 말 그대로 어느 한 물건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마모되거나 부숴진 것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관리하며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미술 애호가이거나 소장가치가 높은 예술작품들, 혹은 개인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소중한 물건을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하여 원형 그대로 간직하기 위하여 복원을 한다고 한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또는 기념관에서나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L의 운동화라는 제목을 보고 왜 단번에 이한열을 떠올렸을까?
복원전문가인 나는 고 이한열 열사의 유품을 보관중인 채관장으로부터 복원을 위한 연락을 받고 박물관으로 향한다.
채관장으로부터 복원할 물건이 다름아닌 운동화란 말을 듣고 망설이게 된다.
1987년 6월, 데모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병원에서 치료중에 숨진 이한열,
그를 떠올리며 복원가인 '나'는 이 일을 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어느 날,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박물관에 들어와 아들의 유품을 둘러보다가 운동화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나는 이 운동화가 우리 아들의 것인지 아닌지,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이 운동화가 아들의 것이라고 하니 아들의 것인가 보다 하는 것이지, 나는 확실히 모르겠다"
라는 말을 듣고 복원하기로 결정한다.
이한열의 고향집은 광주이며 이한열은 신촌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다.
2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운동화는 이미 삭아질대로 삭아저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다.
흐느적거릴 것 같은 운동화를 옮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자동차를 이용해 복원실로 옮기는 중에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마음이 어떠할지 이해가 간다.
복원을 진행하는 동안, 일을 하는 시간보다 바라보는 시간이 많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는 주인공의 입장이 마음에 닿는 것은 무엇일지.
단지 운동화 한 짝이지만 이미 개인의 운동화 한 짝이 아닌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유물이 아닐까.
아니면 운동화 한 짝이 혹시 이 한열 열사를 대신할까봐 망설이는 복원가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도 같다.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물건이 그를 대신해서 찬사를 받거나 칭송을 받아선 안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생명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잊지 않는다는 복원가의 진심이 아뜩하다.
"데모를 하더라도 뒤에서 하고 절대 앞장서서 하지 말라"
는 이한열 열사 엄마의 당부는 세상의 모든 엄마의 당부가 아니겠는가.
아들을 키우는 어미의 마음에서는 가능하면 데모를 하지 말고, 꼭 해야하는 데모라면 주동자 대신 참여자가 되어서 군중속의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만 할 것이며 절대로 앞장서서 주동자가 되어서 경찰서에 들락거리거나 창받이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건 못난 어미이기 때문일까.
그날, 이한열은 많이 아파서 학교도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마침 둘째 매형이 오셔서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기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있었고 데모에 참가했다고 하며,
엄마는 그날 아들이 많이 아팠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물론 후에도 모르셨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다.
피를 흘리는 그를 안고 병원으로 간 친구들, 그가 떨어뜨린 운동화를 들고서 집으로 갈 때 신어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까지 들고가서 기다렸다가 그의 어머니 손에 들려주었다는 여학생,
어디에서 사라졌는지 모를 왼쪽의 운동화 한 짝..
L의 운동화.
누구나 알 수 있는 이한열의 운동화,
자칫 이한열을 우상화 할 수도 있고, 새삼 영웅화 할 수도 있지만 소설은 오직 운동화에만 집중함으로 잔잔하고 내밀한 구성으로 짜여졌다.
복원하는 과정과 복원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그리고 지켜보는 이들의 자세와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생활방식이나 삶의 패턴들을 나열함으로 이한열에 대한 요란함보다는 복원에 대한 진지함을 잘 나타내준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이한열이 아니라 '운동화'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물질이 소멸하는 과정은 인간이 소멸하는 과정과 닮았다.
인간의 육체가 병들고, 죽고, 소멸하는 과정과."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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