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련 화(旱蓮花)
손승휘 / 황금책방
조선을 너무도 사랑했던 '인간' 유관순 이야기
1902년 12월 16일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 살 - 그녀는 다른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빼앗겼다.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열세살 - 그녀는 경성이라는 큰 도시에 홀로 올라와 세상을 배우며 미래를 꿈꾸었다.
열일곱의 3월 1일 - 그녀는 빼앗긴 나라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해 4월 1일 - 그녀는 고향에 내려가 독립을 외쳤다. 상처를 얻었고, 가족을 잃었다.
열여덟의 9월 28일 - 그녀는 서대문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통과 수치의 흔적으로 조각난 시신을 넘겨받는 것만도 여러 날이 걸렸다.
그녀의 이름은 유관순이다.
1945년 8월 15일, 유관순의 나라는 독립했다.
유관순,
너무나 많이 불리워진 이름, 여자도 남자도,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그녀를 유관순 누나라고 부른다.
평소에도 유관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보다는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17세의 소녀라는 것만 알았는데,
책을 읽고난 후 이렇게 유관순이라 적으니 그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진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진정으로 조선을 사랑하는 신념 때문인지, 잃어버린 나라를 찾는데 대한 애국심이나 책임 때문인지를 스스로 적확한 마음으로 짚어내지 못한 그녀이지만, 생명을 걸고 모진 고문을 견디며 동족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움츠려들지 않았던 그녀는 육신을 감싸고 있는 살이나 영혼을 붙잡고 있는 영이나 사람으로 살기에 적합한 뼈 마디마디가 이미 조선을 찾는데 대한 책임과 의무를 느꼈고, 혼은 이미 국가는 정신이라는 오빠의 그 말 한마디가 깊이 뿌리내려 그녀의 삶에 신념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이루고 있었다.
보통의 가정에 태어난 딸이라고 하지만 결코 평범한 가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명석한 두뇌와 올바른 성품을 가지고 반듯한 국가관을 가진 오빠가 이미 조국을 위하여 젊음을 아끼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자신만의 안녕과 부를 축적하는 대신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며, 자신이 가진 재산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을 몸소 실천하셨으며, 일본군들이 교회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불타오르는 교회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비록 교회만이 아니라 당신의 조국이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서 불에 타는 것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어린 관순이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나라,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 독립이 무엇인지, 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부모님의 삶의 모습과 오빠의 모습, 작은아버지와 사촌언니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잃어버린 나라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유없이 빼았으며 갖다 바쳐야 하는 일본인들을 바라보며 두려움과 증오를 터득하며 자란다.
가난하여 학교에 갈 수 없는 관순이를 작은아버지가 선교사님네로 데려가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고, 선교사는 유관순을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으로 입학시킨다. 이화학당에서 사촌인 예도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 중모를 알게되고, 그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계획하는 일과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익현을 만나 사랑을 하게된다.
일본군들 덕분에 하루아침에 富를 거머쥐고 부러울 것이 없게된 익현의 아버지와 익현은 늘 대립하지만 익현은 그런 아버지를 피해서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유관순을 자신들이 계획하는 독립운동과 삼일절 만세운동에 끌어들이게 된다.
유관순을 사랑하면서 익현은 중모와 함께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훗날 독립된 국가에서 떡집을 하자며, 떡 만드는 기술을 배워놓으라던 그의 모습이 유관순의 마음을 단단히 붙드는 동앗줄이 되었다.
어쩌면 유관순 스스로가 말했듯이 유관순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음이 분명하다.
가난하지만 늘 자상하고 정이 넘치는 부모님, 잃어버린 나라에서 공부가 무슨 필요에 쓰이느냐며 운동에 가담한 오빠는 늘 유관순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사촌언니 예도 역시 가냘프고 여리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에 몸을 가리지 않고 그런 피붙이 언니를 관순은 사랑한다.
또한 언니의 남자친구인 중모, 중모의 소개로 만나 함께 일을 계획하는 익현에 대한 남녀간의 사랑,
유관순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다.
파고다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끌여가서 죽임을 당하고 병신이 되어 돌아오지만 유관순은 이화학당의 배려로 풀려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작은아버지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음력 3월1일에 공주에서 다시한번 만세운동을 벌인다. 이 일 때문에 부모님이 일본군의 총에 의해 돌아가시고 유관순은 감옥으로 행해진다.
재판소에서도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외치던 유관순,
모진 고문도 뼈를 깎아내는 아픔도 견디어 내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굴욕적이라는 것은 진정 굶주림에 허덕여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오빠를 잠시 만나고 잠시 마당에 피어있는 한련화를 보며 유관순은 다시금 견디는 힘을 얻는다.
"학교 교정에서, 교회 앞마당에서, 그리고 이제 나를 가둔 이 감옥에서 저 붉은 꽃을 보는구나.
혼자서 덩그러니 남겨진 줄 알았는데 저 꽃이, 저 붉은 한련화가 나와 함께 있었다.
이제 외로움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준비가 되었다." (p.373)
국가,
관순의 오빠는 조선(국가)은 정신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럴까?
너무나 당연한 독립국가 대한민국,
선조들의 생명이, 어린 소녀들의 순결이, 젊은 청년들의 건강한 육체를 이루던 뼈 마디마디가, 일본군의 총뿌리에, 날선 칼날앞에서 당당히 죽어간 그들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 자유국가에서 마음데로 살아갈 수나 있었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자유와 행복과 물질이 그분들이 흘린 피라는 것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이 나는 미안했고, 모진 고문앞에서 벌벌 떨어야 했던 그분들의 두려움앞에서 눈물을 흘려야했고, 같은 민족으로부터 육신에 대한 모멸을 당할 때 나는 더없이 분노했다.
조국을 사랑하여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위해 몸부림쳤던 분들에게 진정으로 고마워했던 적은 있었던지.
다행한 일은 더 늦기전에 그분들을 생각할 수 있었음이다.
삼일절이 국경일 중의 하루라 여기며 어디를 가며 무슨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낼까를 생각하기 전에 그날을 기억하리라.
꽃보다 아름다운 몸으로 질기고 질긴 싸움으로 목숨까지 내놓았지만 그로인해 오늘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되었음을,
이 자유가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않으리라.
이 책을 국회의사당에서 싸움을 하시는 의원들께 돌리고 싶다.
그들이 싸우는 문제가 진정 무엇인지,
자신의 밥그릇인지, 진정 대한민국을 위해서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분노를 나누고 싶은지, 힘 없는 서민의 같잖은 갑질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은이 손승휘
지난 겨울은 끔찍하게 추웠다. 눈과 바람을 맞으며
지령리, 아우내, 금강, 제민천, 정동 길을 수없이 걸어 보았다.
서대문 감옥의 텅 빈 감방을 기웃대며 겨울을 지났다.
소용없다. 상상으로도 네 사랑을 닮지 못했다. - 작가의 말이다.
유관순이 위로받았던 한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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