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 사임당
신영란 / for book
난 좀 그렇다.
지나간 케케묵은 이야기를 들추어내서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보면 속이 터지고, 한 마디도 잊지 않고 그대로 되새김질하며 분노해하는 사람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또한 옛날 일을 들추어내어 굳이 옛날에는 이랬네 저랬네, 남녀가 유별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는 딱 질색이다.
21세기에 얹혀서 살아가는 몸이니 생각도 사고방식도 시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예의를 갖추거나 틀에 갖추어진 삶은 버겁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딱 자르면 될 것을 이러니 저러니.. 말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사임당을 읽으며 그 분의 삶을 바라보고 싶었다.
사임당
강릉하면 경포대가 떠오르고 경포대하면 오죽헌이, 오죽헌이라고 하면 신사임당이 먼저 떠오른다.
500년전에 이 땅의 여자들이 얼굴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살아갈 때, 글을 배운다는 것조차 감히 용서되지 않던 그 시절에 현대여성들의 생각을 가지고 당차게 시대를 살아내었다는 사임당,
그뿐인가,
그림이며 글이며, 수많은 세월이 흘르고 흘러 강릉 경포대의 모래들이 뒤척이는 파도에 다 쓸려나가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를 몇번이나 거듭해서도 잊혀지지 않을 예술 魂을 이 땅에 깊게 뿌리내린 신여성이다.
흔히 알고 있는 사임당의 삶은 어떠했을까.. 못내 궁금해졌다.
귀한 집안에서 귀하게 대접받으며, 희미한 문발을 내려둔채로 잠자리 같은 한복을 맵시나게 입고, 그마져도 정리정돈이 제대로 된 마당에 각양각색의 꽃들이 줄을 서듯이 피어있고, 나비가 교대로 날아 앉아 쉬었다가는 곳, 배롱나무며 감나무에서 매미가 하릴없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즈녁하게 앉아서 글을 읽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을 것만 같은 모습,
그런 사임당을 생각했을 것이다.
여자. 사임당은 작가 신영란이 화자가 되어 옛일을 기억하듯이 조곤조곤하게 사임당이 되어 써내려갔다.
어린시절의 기억으로부터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는 그 순간까지의 삶을 되새기듯이 써내려갔다.
외조부로부터 내려오는 명문가 집안의 내력과 시대를 앞지른 친정아버지(신명화)의 딸에 대한 사랑과 결혼 후 7남매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친정에서 아들이 없이 딸만 다섯인 가정에 둘째딸로 태어난 인선은 어릴때부터 글과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임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여자로 태어났기에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선은 중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여성 태강, 태임, 태서를 존경하였다.
<시경>을 읽으며 세 여성의 역할을 보며 그중에서도 태임을 가장 존경하여 자신이 당호를 스스로 <사임당>이라 지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윤진서로부터 연서를 받고 인선 또한 설레는 마음을 가졌지만 3년을 그 자리에 머물러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19세가 되던 해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원수라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남편을 맞이했을 때 인선 역시 싫지 않았지만 남편의 사고는 인선을 많이 실망시킨다.
과거에 급제하여 정사에 등용시키려는 인선의 바램을 실현시키지 못한채, 다른 여자와의 사랑놀음에 젖어 있는 남편,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떨어져 지내면서라도 과거에 응시하기를 바라는 인선의 눈물겨운 바램에도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아니 이루려는 결심도 못하는 남편에 대한 인선의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헛헛했을지 나는 미루어 짐작한다.
남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 인선에게 셋째 아들 현룡(李 珥)가 어릴적부터 글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임으로 엄마를 위로한다. 첫째 아들 선과 둘째 아들 번 역시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셋째 현룡만이 첫과거시험에서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헛 짓을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짓고 살림을 하면서도 손에서 붓과 책을 놓지 않으며 서당에조차 보내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에 게을리하지 않는 사임당을 보면 어쩌면 그때부터 치맛바람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7남매 모두에게 각별한 사랑으로 지도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과, 7남매를 고스란히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품는 모습, 두 집 살림을 하는 남편에 대해서도 끝까지 모르는척 하는 배려는 시대에 맞는 현모양처의 모습이다.
강릉을 그리워하는 모습, 친정어머님을 그리워 눈물 짓는 모습이 애닯기만 하다.
그래서 사임당의 글에서 경포대가 많이 등장하나 보다.
한양에서 서울까지 아흐레를 걸어야 갈 수 있기에 자식들을 데리고 가기도 힘이 들었지만 훗날 병든 몸이라 마음데로 다닐 수 없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친정 어머니를 두고 혼자서 먼 길 떠나는 불효, 7남매 중 어느 누구도 여의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내 마음을 후벼파게 만든다.
기품있게 앉아서 글을 읽으며 붓을 갈며 세월을 노닐었을 것 같았던 사임당도 역시 지금의 나처럼 남편으로 인하여 헛헛해하는 마음을 겨울바람처럼 추스리고 살았고, 7남매를 향한 사랑과 책임으로 매를 들고 꾸짖기를 망설이지 않았으며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하여 농사를 짓고 길쌈을 길었으며, 시어머니를 두려워하며 친정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이었음을 확인하며 어쩌면 나는 기대가 무너지기도 하고, 또 어쩌면 평범하지 않고 기품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과 그랬다면 좀 더 긴 세월동안 이 땅에 머묾으로 더 많은 작품을 남겼으리란 생각에 허전해지기도 한다.
500년전에 살았던 한국여성상의 대표적인 여성 사임당,
경포대에 가서 그 분의 자취를 느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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