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이기호 / 민음사
차남들의 세계사
이 책을 고를 때의 내 마음은 이랬다.
아들 둘만 키우다보니 장남과 차남은 늘 다르게 대하게 된다.
장남인 주현이가 군대에 입대할 땐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조금도 담담하지 않았음은 남편과 춘천 102보충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했지만 대화의 양이 자꾸만 줄어들고 상대방의 말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심지어 파란 불에서도 차가 달리고 빨간 불에서도 무심하게 달리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담담한게 아니구나...싶었다.
차남인 세현이가 군대에 갈 때는 어땠는가.
며칠전부터 집안공기는 스모그가 가득하게 깔린 것처럼 가라 앉아 있었고 입대하는 차 안에서부터 속울음을 꾹꾹 참고 운전에 집중하느라 애를 쓰는데도 자꾸만 헛손질이 나갔던 것을 기억한다.
연병장에 모이는 청년들속에서도 오로지 세현이만 쫓아다니는가 하면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려 어딘가로 떠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며 기어히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일, 집에 와서 방문을 열어도 울음이 확~, 며칠이 지나서 밥을 먹으려는데도 갑자기 밥이 숟가락에 얹혀지기도 전에 눈물이 훅 쏟아졌던 일을 거짓없이 기억한다.
장남이나 차남이나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치는데 어느 날 장남인 주현이가,
"우리세현이 우리세현이, 세현이만 있으면 되지뭐"라며 나를 향해 콧등을 쳤고, 이를 듣지도 못한 세현이는,
"우리주현이 우리주현이, 형 밖에 모르는 편애하는 엄마지"라며 역시 콧잔등을 치며 씨익 웃어대었다.
"웃기네. 난 둘 다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했다" 며 큰소리 쳤지만, 세현이가 보기엔 형만 편애한다는 생각이 틀림없을테고
주현이가 보기엔 세현이를 편애한다는 마음이 또한 확실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과연 차남에 대한 내 태도와 차남이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골랐는데.
아뿔싸!!
'이 책의 내용은 이 세상의 차남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굳이 책에서 차남들을 찾아내자면 神 보다 형님을 더욱 두려워하는 차남들의 공통적인 마음이라고나 할까?
하기사 우리집 차남 또한 부모 보다 장남을 더 무서워했으니..
나복만,
시대를 잘못 알고 툭 태어나버린, 부모형제도 모르는 천애고아이다.
덕분에 글씨를 쓸 줄도(아는 것이라곤 안전택시, 통닭, 통영, 매일경제, 경제신문 뿐이다)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른다.
이름 석자만 겨우 쓸 줄 아는 나복만이 운전면허증을 딴 것 역시 법을 어기면서 취득한 것일 뿐이다.
요즘 같아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뒷돈을 주고 면허증을 획득한 것이다.
고아출신인 나복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운전밖에 없었고, 그런 그가 교통준수를 모범적으로 지킨 이유는 혹여라도 경찰서에 들어가게 되면 글씨도 쓸 줄 모르고 읽을 줄 모르는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 불법으로 취득한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무슨 일이 있어도 운전면허증을 지며야 한다는 확실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나복만이 전혀 엉뚱한 일로 경찰서에 제 발로 걸어가게 되고, 마침 전두환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당선되고, 체육관에서 취임식을 거행하고, 보복하듯이 사람들을 떼거지로 경찰서로 유치장으로 몰아넣던 때, 광주사건이 터지고 부마사건이 터지게 된다.
제 발로 도로교통법 위반에 대해서 경찰서에 찾아간 나복만은 진급과 건수에 눈이 먼 경찰관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었다.
글씨를 모르는 무지함으로 인하여 도로교통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라는 올가미에 씌어진 나복만이 당하는 온갖 고문들을 생각해 보라.
누군가 한 사람만이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그런 혹독한 고문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않았을텐데, 아무것도 모른체 국가보안법에 휩싸인 나복만이 당하는 고통과 주변에서 당하는 고통까지를 생각하면 되겠다.
시대적인 상황이 나복만이 아니라 그 누구이든 충분히 끌려가서 국가보안법을 어긴 죄인이 될 수가 있었고
누군가가 꾸며놓은 시나리오에 당당한 주인공이 되어 억울한 옥살이와 피눈물나는 전기고문과 갖가지의 신메뉴의 고문을 당할 수 있었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어이없게 말살되어 버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도 힘 없는 누군가는 이렇게 처참하게 자신의 일생을 망치고 있을수도 있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기호 작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님으로 재직중이라고 하는데 소설을 이어가는 기법이 참으로 놀랍다.
자, 이것을 손을 바꿔, 다시 턱을 괸 채 들어보아라.
자, 이것을 감자칩이라도 우물거리면서 들어보아라.
하는 식으로 문장이 바뀔 때마다 한 마디씩의 말들이, 무거운 책의 내용을 유머스럽게 풀어내고
긴장한 채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마음을 풀어헤치게 만든다.
앞으로도 작가의 책을 자주 만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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