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연애
성석제 / Human & Books
이야기꾼 성석제,
그의 익살스럽고 진솔한 이야기,
억지가 아니고 무언가에 대한 강요가 아니고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어머니나 할머니를 통해서,
또는 그녀들의 무릎에서 밀려드는 잠과 함께 들어가는 이야기,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나 우리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재치있게, 또한 즐겁고 행복하게 풀어가는 그의 글은 늘 나로하여금 기다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단 한번의 연애,
어쩐지 성석제 답지않은 제목이지만 어쩌면 가장 성석제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고른 책이다.
너무나 익숙한 경북 구룡포가 주인공 이세일의 고향이고 소설은 구룡포를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이미 오래전이지만 그때는(아무래도 나와 성석제의 어린시절은 비슷했으리라, 같은 시대에 같은 경북이란데서 태어나 유년의 시절을 살아왔으니) 구룡포 앞바다에 고래가 많이 살았던가 보다.
구룡포 사람들이 '물반 고래반'이라고 할만치 고래가 많았고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니 말이다.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고래를 잡아 자녀들을 가르치고 부모를 공양하며 피곤한 일상을 힘겹게 살아내어야 했던 그때,
세일의 어머니는 해녀 출신이어서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는 대신 어머니가 물에 들어가 해삼이나 미역이나 전복과 소라를 채취하여 생계를 이어갔다.
넓고도 넓은 바다속에도 자신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채취한 해산물로 살아가는데 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아버지는 어머니의 바닷속 영역을 술값을 위하여 팔아넘김으로 구룡포를 떠나 포항으로 이사를 하게된다.
구룡포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세일은 박민현을 보고 첫 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구룡포 어린이들과는 달리 세련된 옷차림새와 하얀 피부와 곱고 예쁜 얼굴을 보는 순간,
입학식 날의 추위를 잊을만치 민현에게 마음을 빼앗긴 세일은 이후 평생을 민현을 바라보는 민현바라기이기도 하다.
민현의 어머니는 일본인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사원이지만 그때는 일본인과 함께 살아가는 처녀들을 '나나'라고 불렀고 '나나'는 뜻과 달리 많은 이들에게 천대시되고 있었다.
구룡포 아이들이 갖지 못한 세련미와 도회적인 이미지는 많은 아이들의 적대감을 일으켰고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으로 힘겨워하는 민현의 뒤를 따라간 세일은 민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속에서 민현이 다른 아이들보다 외롭고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민현을 의식하게 된다.
어머니의 바다속 영역까지 팔아넘긴 세일이네는 포항으로 이사를 하고 포항에서 해녀출신의 엄마는 식당을 운영하고 음식솜씨가 좋고 해산물을 보는 눈이 있음으로 식당은 날로 번창한다.
포항에서 중학교에 입학한 세일은 늘 민현의 소식이 궁금했는데 어느날 민현이 포항의 중학교에 입학한 사실을 알게되고 친구를 따라 민현이 다니는 교회를 찾아가고 거기서 민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민현에 대한 수많은 루머가 세일을 괴롭히지만 세일의 마음은 오직 민현만을 향해 열려있다.
서울에서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서울의 대학에서 다시 민현을 만난 세일이지만 쉽게 가까워질 수 없고 늘 바라보고 애만 태우는 형국이지만 시위현장에서도 우연처럼 민현을 만나고 군(전경)에서도 민현을 만난다.
책의 내용은 어른이 된 지금, 미국남자와 결혼한 민현이 한국의 기업들과 컨설팅을 하기 위하여 귀국하고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세일과 만나 함께 지내며 구룡포를 찾아가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들으며 단 한번의 연애를 즐기며 지난 일들을 추억하면서 써내려간 글이다.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의 주변에서 맴을 돌며 서로를 지켜보는 두 사람,
끝없는 구애를 하는 세일에게서 늘 냉정하던 민현은 결국 세일에게 직장을 구하게 하고 이후의 일까지 세밀하게 간섭함으로 세일의 사랑에 보답을 한다.
특별한 욕심없이 너무나 평범한 남자이기에 오히려 편안하다는 민현의 말처럼,
오로지 사랑 하나만으로 민현을 바라보는 세일의 일편단심을 민현이 모를리가 없다.
평생을 함께하지 못하지만 며칠간의 연애로 하여금 평생을 보상받는 세일은 민현으로 하여금 아팠고 힘들었고 서러웠고 괴로웠고 치유되고 즐거웠고 행복했었음을 고백한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한 여자의 힘들고 척박한 삶에서도 꿋꿋하게 일어서는 이야기,
고래잡이들의 특성과 고래의 특성과 그들이 사는 삶의 모양을 낱낱히 설명해주는 이야기,
반듯한 기업에서도 누군가는 속고 속이며 결국엔 스스로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사람사는 세상의 이치들,
정조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던 그때가 아니고 쉽게 만나고 쉽게 관계를 맺으며 쉽게 잊혀지는 엄연한 현실의 외면하고픈 이야기,
어느 곳에서나 사람사는 곳에서 맡을 수 있는 부패와 집단의 이기심과 끝모를 경쟁들,
약한 자와 강한 자의 살아나는 방법들이 처절하게 파헤쳐진 이야기들..
소설의 재미를 위하여 지나간 시대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을 냉정하게 파헤침으로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지금의 모습이 어떤곳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인하여 내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지만 인정함으로 오늘을 받아들여야 나 역시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무수한 겨울바람속으로 때로는 더디게 때로는 재빠르게 시간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