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이 정 명 著 / 은 행 나 무
서 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12년이 저물어가는 하루의 저녁처럼 소리없이 저무는 날,
보내는 아쉬움도 다가오는 설레움도 잊은채로, 무심함으로 보내는 시간들이다.
무심히 고른 책에서 윤동주를 만날 줄은 꿈엔들 알았을까.
반가움과 충격과 미련한 나의 정보가 뒷통수를 치는 느낌을 받았다.
윤동주,
윤형주의 육촌형님이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보다 '서시'라는 詩로 온 국민의 마음을 정화시킨 분이 아닐까.
흔하지 않은 시집과 한번을 읽어도 마음속 어딘가에 잘 박힌 돌 처럼 박혀버리는 그분의 시가 새삼스럽게 그립기만 하다.
너무나 짧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입성한 시인,
그분에 대한 서러움이 겨울한파속에 담긴 공기처럼 싸아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
악독하기로 소문난 스기야마 도잔 간수가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되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형무소안에 갇힌 사람들은 일본인보다 조선인들이 많고 일본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핍박과 고문이 조선사람을 죽이게 한다.
멀쩡한 사람들을 병신으로 만들고 시체로 내보기도 하는 후쿠오카 형무소의 스기야마 간수는 간수들 사이에서 악마라 불리울 정도로 잔인하고 혹독하게 죄수들을 다스리고 감독한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와타나베 유이치라는 젊은 간수가 스기야마가 맡았던 간수의 일을 감당한다.
소장으로부터 스기야마 도잔에 대한 살인범을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은 유이치는 조선인 죄수들을 심문하기 시작한다.
잔인하게 죽은 스기야마 도잔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던 유이치는 전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규슈제대 의학부에서 형무소에 있는 죄수들을 위하여 진료를 하기 시작했고 피아니스트이자 간호사인 미도리로 부터 스기야마 도잔이 악마가 아니었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듣는순간, 유이치는 어딘가모를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캐나가기 시작한다.
스기야마 도잔은 윤동주의 시를 읽는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글 한줄이 사람의 마음을 어떤 힘으로 움직이고 정화시키가를 깨닫는 순간, 그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맛본다.
윤동주의 詩 하나하나에 그의 마음이 움직이고 잔인하던 마음이 평화를 얻으며 절망을 노래하던 그가 희망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검열관으로 윤동주의 시를 읽던 그는 윤동주의 시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어떤 모양이든 詩를 형무소가 아닌 세상밖으로 내보내기 위하여 윤동주에게 연을 날리게 하고 연 싸움을 하게 한다.
연에다 시를 쓰고 의도적으로 형무소밖으로 연을 날려보내는 스기야마 도잔과 시를 쓰기 위해 몸부림치는 윤동주.
어느새 스기야마 도잔은 조선인을 죽이는 악마에서 조선인을 사람으로 대하는 따뜻한 인간으로 변하고
죄수들의 엽서를 대필하는 윤동주의 글에서 무참한 사람들이 가지는 희망을 보게된다.
날마다 피폐해져가는 윤동주에 대한 연민과 한줌의 인간성도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 속에서 조선인들을 보호하기까지 한다.
규슈제대 의학부에서 생체실험을 시작하고 어이없게도 조선인들이 실험에 대상이 되는 참혹한 현실에서 조금씩의 상처로 실험대상자에서 빼내려는 그의 마음이 안타깝다.
최치수라는 사람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운 소장은 유이치에게 스기야마 도잔의 업무를 맡기지만 유이치 역시 문학을 사랑하며 글자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詩들이 신음하는 소리를 듣는 문학도였다.
윤동주를 심문하던 유이치 역시 詩를 통해 일본과 조선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인정하고 괴로워한다.
끝까지 윤동주를 지키려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고맙고 안쓰럽게 여겨진다.
고된 노동과 하루 한끼의 주먹밥은 윤동주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살아남을 자유조차 허락하질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규슈제대 의학부에서는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서 바닷물을 주사하고 그로인해 사람들의 몸과 영혼은 벗겨진 허물처럼 허물어져만 간다.
끔찍한 현실앞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유이치의 고백과는 달리 일본을 위하여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래도 '마루타'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후쿠오카 형무소
죄수들보다 더욱 잔인한 죄인들이 환한 웃음과 벗겨진 머리와 부른 배를 안고서 사람을 죽이는 실험을 하는 곳,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실험대상자가 되어 죽어가야 하는 약소국의 조선인들,
처참한 현실앞에서 양심이 있는 두 간수를 통해서 윤동주의 詩와 그이 삶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위로라도 받아야 하는지.
곳곳에 소개된 윤동주의 시들을 보면서 얼어붙은 내 마음이 힘을 얻는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을 위로하는 윤동주..
짧은 생을 살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젊은 시인으로 인하여 우리는 희망을 노래하고 살아있는 날들동안 부끄럽지 않기를 다짐할 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