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 연 수 / 자음과모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김연수의 글은 가끔 까다롭고 가끔 어렵다.
그러면서도 선뜻 그의 글을 찾는 것은 김연수만의 독특한 글쓰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가을이 시작될 때쯤부터 신문 구석 곳곳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고 , 입양아의 부모찾기란 줄거리는 나를 충분히 끌어당겼다.
사람은 누구나 나보다 약한 사람을 보면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곁에서 입양될 아이들을 키우는 집사님을 보면 그 마음이 도대체 어떠할까.. 싶어져 궁금하기도 하고
해외로 입양된 아가들이 잠시나마 위탁부모의 노릇을 한 부모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나 할까 싶은 마음이 늘 안쓰럽게 한다.
카밀라,
동백꽃이란 뜻의 이름 카밀라는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여자이다.
양부모 중에서 엄마 앤이 죽고나자 양아버지 에릭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재혼하고, 스물네살의 카밀라는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된다.
양아버지 에릭이 재혼하기전, 카밀라에게 그녀의 물건들을 보내게 되고 하찮게 여겨진 카밀라는 물건들을 풀어보지도 않은채 쌓아둔채로 지내게 된다.
'유이치'라는 청년(시인이며 배우이기도 한)을 만난 카밀라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유이치로 하여금 글을 쓰는 법을 알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하여 에릭이 보내준 상자들을 하나씩 풀어보고 거기서 나오는 물건 하나를 두고 연상되는 글을 쓰기 시작한 카밀라는 어느 날 친모가 갓난아기인 자신을 안고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에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 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이라는 글만 남긴채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카밀라는 친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국을 찾게된다.
사진의 배경은 동백꽃 한송이가 떨어져 있고 주변에 홍등과도 같은 어쩌면 사과같기도 한 붉은 꽃들을 배경으로 어린 소녀가 아기를 안고 있다. 사진 한 장을 들고 유이치와 한국으로 온 카밀라는 친모를 찾기 위해 친모의 고향인 진남으로 내려간다.
글의 줄거리는 친모를 찾아가는 과정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진남여고 학생이었던 엄마 정지은,
진남매일신문에 기재된 사진을 보고 김미옥(정지은의 친구)가 카밀라를 찾아온다.
카밀라를 만난 김미옥은 카밀라를 만나자마자 '지은이랑 똑같다'고 말을 한다.
김미옥에게서 정보를 들은 카밀라는 진남여고를 방문하여 정지은을 추적하지만 교장인 신혜숙은 그런 학생은 진남여고에 있을 수가 없다며 학교를 대표하고 자랑하는 열녀비를 보여주지만 카밀라는 포기하지 않고 엄마의 자리를 추적한다.
결국 '바다와 나비'라는 학교문집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정지은의 시와 수필을 읽게된 카밀라는 자신의 이름이 '정희재'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글은 정희재가 아니라 정지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미래조선에 근무한 아버지는 크레인을 타고 옥상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다 그로인해 생활관에서 농성중이던 4명의 인부들이 불에 타 숨지자 자신도 자살을 하고만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사장인 이상수의 집으로 찾아가 돌을 던지지만 결국 사장을 만나지 못한 지은은 오빠와의 어렵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최성식이란 국어교사의 아기를 갖게 되지만, 최성식은 지은을 버려둔채 영어교사인(현재의 교장) 신혜숙과 결혼을 하게된다.
여고생의 임신.
숱한 이슈를 가져오는 것은 뻔한 일이지만 누구보다 친구들로 부터의 따돌림은 지은을 결국 깊은 바다속으로 밀어넣게 한다.
희재를 입양시킨 것 역시 지은의 뜻이 아니었지만 최성식 부부의 교활함으로 희재를 해외입양보낸 지은은 날개를 잃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정희재의 아버지가 정지은의 오빠인 정재성이라고 소문을 내는가 하면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온갖 소문을 그럴 듯하게 내지만 그들 역시 끝까지 행복하지만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지은의 친구들 유진과 미옥, 윤경의 고백을 들으면 자신들이 지은을 죽게 만들었음을 고백하고 영화감독이 된 유진의 인터뷰를 통해서 소녀시절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뒤늦은 후회를 한다.
책을 읽는내내 안타까움이 나를 지배했다.
엄마를 찾고자 하는 카밀라의 마음이 아팠고, 여고생의 몸으로 아기를 낳고 차가운 바닷물속으로 생을 마감한 지은이 안쓰럽다.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세상,
힘들고 외롭고 가난할 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은 차디찬 세상,
질투와 시기심으로 두서없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투서는 누군가의 생명을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살아간다.
우리에게 좀 더 사람다운 마음이 가슴에 남아 누군가의 아픔을 감출 수만 있어도 좋겠다.
필요이상으로 캐내고 상처를 건드려 소금을 뿌려 결국엔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왕따놀음의 끝을 우리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20년전이나 지금이나 왕따를 시키는 사람이 있고 왕따로 인해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참 슬프게 한다.
책을 읽으며 정말 김연수의 작품이 맞나...싶을만치 섬세하다.
입양아의 외로움과 미혼모의 고독함, 가진 자의 교활함과 가난한 자의 억울함까지 미묘하게 표현한 문장들은 여자들의 그것과 같았다.
아직은 가을이고픈 계절, 아직은 남국의 햇빛이 필요하다며 가을이기를 우기고 싶은 날들,
어느새 겨울은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들어 두꺼운 옷을 찾게하고 따뜻한 햇볕바라기를 하게 하는 것을 인정하자.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도 마음속에 환한 빛은 간직하고 살고 싶다.
그로 인하여 내가 세련되지 못하고 세상 살아가는데 좀 밑지더라도,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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