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금, 점심에 쪼끔, 오후에 아주 쬐꼼~~
뭐 그리 아까운지, 비가 감질나게 내리는 날이다.
출근을 하려고 하니 비가 내리고, 일찌감치 운동을 나서려니 환하던 날씨가 다시 비가 내리고, 한숨을 내품으며 바람을 쐬려니 다시 빗방울이 뚝뚝..
하루종일 비를 기다리는 내 마음을 하나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흑흑~~
도대체 이 여편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까.. 궁금하실 분이 많으실 것 같아서 자초지종을 고하려고 합니다.
비가오는 날 집에서 부침개를 만들어 평내광고에 가져가서 신랑과 맛있게 먹을거라는 생각도 하실게고, 모처럼 밀린 낮잠을 비가 내린다는 핑게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잘거란 생각도 하실게고, 입에 달고살던 여행을 떠났지 싶다..는 생각도 하실테고..
결론은 레이저테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4월 어느날, 둘째 토요일에 우리는 2,4주 휴무를 기억하고 쉬었고 나는 남양주시에서 개최하는 한강걷기대회에 참석하여 교회집사님들과 화기애애하며, 벚꽃을 바라보고 개나리를 바라보고 잘 다듬어진 남양주길을 걸으며 몸도 마음도 한없이 행복하기만 했었다.
수다를 풀며 행복에 겨운데 울리는 전화벨..
'이과장, 지금 어디야? 뭐하고 있어?'
잔뜩 힘이 들어간 사장님..
대꾸할 틈도없이 쏟아져나오는 말과 말과 그리고 말과 감정..
일단은 전화를 끊고 사장님 마음이 가라앉히길 기다리다가 내가 전화..
'사장님, 2,4주 쉬는 토요일이라 오늘 쉬었어요'라고..
'누가 2,4주 토요일 쉬라고 했어? 일 없을때 이야기지, 일이 많아서 매일 야근하면서도 쉬어? ㅈㄹ하고 있네..'
'.............'
아~~ 이젠 그만두어야겠구나.
그날 이후 쉴토가 없어졌음을, 그리고 나는 앞에 가로막힌 크나큰 산을 보았다.
SK, 수출건, 우리은행건..
산더미 같이 쌓인 일들앞에서 직원들을 다둑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처리하는 나는 남들이 보기엔 놀고있는 것 같고, 원부자재 파악과 발주, 생산물량의 체크와 부족한 부분들이 무엇이며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주한 원부자재는 언제쯤 도착하여 일에 지장이 없을지, 오늘 나가야 할 품과 내일 나가야 할 제품은 또 무엇인지를 체크하노라면 머리가 띵~~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16년의 경력은 혼자흐른 세월이 아니어서 나름대로 척척 해결한다.
그런데.. 직원들앞에서 사장님 왈..
'이과장은 놀고 있네, 펑펑 놀고 있네'라고..
이틀동안 세번을 말했다. 딱~~ 세번을..
난 가진것이 없다, 세상적으로 볼때에는..
통장을 하나 가지고 있지만 늘 잔고가 달랑거리고, 집이라곤 27평 아파트 하나이고, 빚쟁이 같은 두 아들이 일년에 두번씩 정확하에 거금을 요구하고, 감당하지 못하여 은행에서 학자금이란 명목으로 대출을 받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숨겨놓은 땅도 없다.
그래도 자존심이란건 누구못지 않게 큰거 하나를 가지고 있으니...
'아, 16년은 너무 긴 세월이었어. 여기서 멈추도록 하자'
그놈의 세월은 왜그리 찐하게 흘러갔던지,
사직서를 쓰려는 마음을 결단하는데 1달이 걸렸다.
그 한달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정말이지 조석으로 바뀌는 마음은 무슨 조화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
사장님이 아무리 독한 말로 내 자존심을 묵살시키고, 반평생을 살아온 내게 욕을 했을지라도 정은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어서 차마 앞에서 말을 할 수가 없어 이메일로 사직의 의사를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건강이 좋지 않고, 신랑의 일을 거들어야 한다'며 최대한 성의있게, 최대한 예의바르게, 그리고 상대방의 기분이 흐려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후임이 채워질 때까지 봐달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그러겠노라고..
그러나 사람구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5월말로 계획했던 나는 제주올레투어를 신청하고, 시간은 지나는데 사람은 구해지질 않고..
결국 6월10일로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었는데, 6월 9일 사장님이 보자고 하신다.
'왜 이렇게 나를 슬프게 하나. 이과장이 없으면 이 일을 누가 맡아서 해? 내가 1층에서 직원들을 살피며 원부자재를 관리해야 할판인데.. 세현아빠 에겐 미안하지만 여행다녀와서 좀 더 봐주도록 해. 팔이 아프면 병원다니면서 물리치료하면서 부담가지 말고.. 생각을 접어줘'...
아시다시피 떠들썩하고 요란스럽게 제주올레투어를 다녀와서 출근을 하니 사장님의 안색이 싸늘한 얼음장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동료가 사장님께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물론 나도 의도한 바이다.
'과장님이 몸도 좋지 않지만 사실은 사장님의 말씀에 마음이 많이 상했어요. 그래서 그만두는거예요'라고..
나를 불러낸 사장님 왈..
'이과장, 그만둔다고 생각했으니 6월로 끝내도록 하자. 마음을 그렇게 먹었으니.. 후임이 언제올지도 모르는 상황이고..그렇게 하자'고..
처음 산 새옷을 입고 나가다 똥을 밟은것 같은 마음이지만 어차피 그만두기로 먹은 마음이라 그러겠노라고.. 그러자고.. 거짓웃음까지 보였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난 후,
거래처에서 난리가 났다.
'이과장이 없으면 수출건 못맡깁니다'..
'이과장이 없으면 우리은행건 고려합니다'..
물론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일본과 우리회사를 연결시켜 주는 분과 우리은행 담당자가 사장님께 다이렉트로 이야기 하고 말았다니..
순간적으로 모든 상황이 역전이 되었다.
나는 의기양양해졌고 사장님은 의기소침해졌다.
6월 25일,
다시 나를 부른 사장님..
'이과장, 내가 말한게 섭섭했어? 내가 말 함부로 하는거 알잖아. 그걸 마음에 두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일 하겠어? 당장 이과장이 없으면 일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는거 몰라? 직원들 관리와 원부자재 관리를 누가 하겠어? 누가 이과장처럼 내일같이 차분하게 꼼꼼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
세현아빠 일이 좀 바쁘다고 하더라도 좀 더 봐줘. 이과장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란걸 누구보다 잘 알잖아'
참 이상하다.
진정을 담아서 내놓는 마음앞에는 아무리 견고한 마음이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니...
3/4분기 시작이라 수출건, 우리은행건, SK 네트웍스건.. 군부대의 건들..
차마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16년의 세월이 다시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고
내가 나가면 따라서 사직하겠다는 직원들이 하나 둘 생기니..
결국은 발목을 접었습니다.
지금 이 선택으로 하여금 훗날 후회를 할지 모르지만 이 상황을 모른척 하기엔 제가 좀 매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했나요?
그렇더라도 지켜봐 주십시오.
언제일지는 모르나 좋은 일로, 아름다운 마무리로 끝맺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예전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새로운 열정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