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 레 꽃
정도상 연작소설
창 비
새봄이라고,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왔노라고 찧고 까불던 것들은 결국 성급한 내 성질탓이었다.
해마다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우둘둘 떨었고, 입학식이 있는 날이면 넓은 운동장에서 오돌오돌 떨었던 기억을 잊었었다.
입춘을 지낸 날은 포근했고 어디선가 봄꽃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종내는 두리번거리며 봄꽃들을 찾아나섰던 내 모습은 성급함이었다.
봄이 지나는 길에 하얗게 핀 찔레꽃은 유난히 벌이 많이 날아들고
오동통한 찔레가 있는 가시덤불엔 흉칙스런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찔레를 꺾으려는 나를 물러서게 했던 유년의 기억때문에 나는 찔레덤불곁에 가까이 가질 못한다. 지금까지...
정도상이란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책을 고르면서도 모험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막상 책장을 펼치니 섬세한 표현과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아우르는 솜씨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단편으로 발표한 소설이지만 결국은 한곳으로 묶이게 된 연작소설,
탈북자들의 고된 삶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당하는 설움과 그들이 살아가는 핍절한 인생살이와 그들이 아파하는 가슴끓임과 그들이 받은 상처투성이를 펼쳐냄으로 탈북자들에 대해 무심하게 지나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어릴적부터 들어온 북한의 실상은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어느정도는 거품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북한은 어릴적 배운 북한의 실상들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욱 심각한 가난과 배고픔과 억압과 노동과 강제가 성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고생인 충심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든 열일곱의 소녀들이 그런 것처럼 풋사랑에 설레이기도 하고, 앞날에 대한 부푼꿈으로 공상에 젖기도 하며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도 하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돼지먹이를 실어나르는 엄마와 병든 아버지,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며 점심시간이면 밥 대신 나물죽을 먹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녀였다.
재춘이란 남학생과 사랑을 하며 미래를 꿈꾸기도 하는 충심이 여름방학을 맞아 함흥에 있는 이모네로 가게되고 이종사촌인 미향이와 인신매매단에 걸려 두만강을 건너게 되면서 한 여자의 인생이 희망에서 절망으로 변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중국으로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두만강을 건너던 안개자욱한 밤, 충심을 말리려던 재춘이 두만강에 뛰어들고 결국 북한의 경비초소에 발각되어 총살당하고 만다.
광명촌과 신흥촌으로 팔려간 미향과 충심은 지금의 우리나라 농촌남자들이 조선족이나 베트남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듯이, 그런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낮에는 시아버지가, 밤에는 아들과의 생활은 결국 미향일 미치게 만들고, 마약에 찌든 남편이 공안에 고발함으로 도망쳐 나오게 된 충심..
자신의 이름을 가지기 위하여 어느 곳에서든 자유롭기 위하여 시민권을 가지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기만 하다.
원하지 않은 곳에 머물게 되었지만 결국 불법체류자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 충심은 천신만고끝에 한국으로 오게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모든게 달라지리라 여겼던 충심에게 한국은 역시 이국땅일 뿐이다.
탈북자란 이유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한국,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같은 민족에게서 느끼는 배반감과 이질감은 결국 노래방에서 떠돌아다니는 도우미로 남게 만든다.
북에 계신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정착금을 내놓아야 하고, 아버지의 묏자리를 위하여 몸을 팔아야 하는 고된 삶속에서 가짜 결혼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앞에서 충심은 생각한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어쩌다가 세상이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을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을 이용하여 돈으로 사람을 사고 팔아먹는 세상, 그들을 이용하여 착취하는 사람들..
인권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말인가?
약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인권이란 얼마나 커다란 사치인가.
넘치도록 풍요한 사람은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유린하여 배를 불려가는 서글픈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기만 하다.
이 순간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생명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는 이들이 있을테고 우여곡절끝에 한국에 도착하여 자유를 꿈꾸며 희망을 노래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그들에게 좀 더 따뜻한 손을 내밀고
마음으로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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