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친절한 복희씨

여디디아 2008. 1. 31. 09:19

 

 

친절한 복희씨

 

박  완  서

 

문학과 지성사

 

 

9년만에 신작소설집이 출간되었다는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클릭을 했고 이틀이 지난뒤 반가운 손님처럼 책이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

 

여든을 바라보는 작가의 필체와 흐름은 여전한 것을 보니 아직도 정정하신듯 하여 반갑기만 하다.

글 속에 스민 웃음과 해학, 그리고 고통과 함께 잔잔히 배어있는 서민의 한(恨)과 서러움,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아픔과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아픈통증과 어려운 시절의 질곡들,

누구나 겪어야 할 성장통 같은 괴롭고 즐거운 세상살이의 모습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꼭 내 이야기인듯한 공감대까지...

나이가 들수록 삶에의 경험이 많아지고 몸소 체험하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잔잔하고 세밀하게 풀어쓴 모습을 보면 사람사는 모양새는 누구나 비슷하구나 싶어서 고단한 지금의 내 삶마져도 위로가 된다.

 

가난한 이들의 곤핍한 삶,  

나이들어 자식들에게 팽개쳐지는 짙은 외로움과 서글픔과 배반감,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과장된 몸짓과 사치스런 허풍..

여전히 작가는 이런 모습들을 숨김없이, 부끄러움 없이 드러냄으로  부족한 나의 삶들이 그리 부끄럽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그리움을 위하여' 는 이미 황순원문학상이 제정되던 해에 수상을 한 작품이어서 읽은 내용이지만 다시 읽어도 깨소롬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 남자네 집'도 이미 오래전에 읽은 내용이다.

작가의 처녀시절의 회상이 그립고 즐겁고 재미나다.

 

이번 글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에 읽은 내용은 '촛불 밝힌 식탁'이다.

서울근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한 '나'는 아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된다. 똑 부러진 목소리로 같은 집에 살기 싫어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설득시켜(아들네 집 아파트를 넓혀주는 댓가) 같은 아파트에서 마주보며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기로 한다.

아들네 집 창문에 불이 켜지면 '우리아들이 오늘 하루도 무사하게 살다가 밤을 맞이하는구나'라는 마음을, '우리부모님이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밤을 맞이 하시는구나'라며 확인함으로 가족간의 유대감을 느끼며 서로를 확인하려는 부모의 마음에서이다.

그렇게 아들네 집 아파트의 불이 켜짐을 확인하는 부모의 생활은 어느정도 기쁨이고 가끔 한번씩 두 가족이 외식을 하며 나누는 시간 또한 친구들에게 자랑거리가 될만한 기쁨이 된다.

어느날, 부인이 새로운 방법을 착안해 내게 된다.

인스턴트 식품과 외식을 자주 하는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기억한 어머니는 주저없이 아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식기전에 아들네 집으로  달려간다.

처음 어머님의 음식을 받아든  아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횟수가 잦아들게 되는데 어느날 부턴가 애써 만든 음식을 되가지고 오는 일이 많아진다.

또한 아들네 아파트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진다. 

그런 어느날, 아들네 집의 불 꺼진 창과 옆집의 불꺼진 창에 차이가 남을 알아차린다.

무언가 흐린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듯한 집과 칠흙같이 어두운 집의 차이,

어느날 '나'는 산책을 한다는 핑게로 아들네 아파트를 찾는다.

'딩동~~', 몇번을 눌러도 소리없는 집, 조그마한 구멍속으로 눈알 하나가 보이는가 하면 두런거리며 몸을 감추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서 나오는 데 마침 앞집 여자와 엘리베이터를 동승한다.

멋적은 '나'는 앞집여자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908호에 아직 아무도 안들어왔나 보다'라고 한다.

그때 앞집여자가 말한다.

"908호 아저씨 들어오셨는데요? 우리집에서 파 한뿌리 달라고 했는데요?"       

'나'는 말하고 있다.

'알아듣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아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받아들이는 것일까? 

 

이 글이 유독 내게 와닿는 이유는 지금의 내 모습또한 아들의 모습보다 나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내 아들들이 훗날 이런 아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받아들이기 위함일까?

내가 부모님께 하는 처사도 효도는 결코 아니고, 내 아들들이 내게 하는 것도 중뿔나게 효도할 아들같지는 않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부모님과 자식간의 관계, 

이런 서글픈 현실조차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만치 어느새 나도 지딱지딱 지나는 세월에 물들었음을.. 

 

그외에도 모든 내용들이 현실의 우리들의 모습에서 손톱만한 덜함도 더함도 없이 나타나있다.

 

박완서선생님,

더욱 강건하셔서 좋은 글로서 저를 반성케도 하시며 정진케도 하시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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