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자연휴양림 옛길에 다녀온 것을 본 안명애 권사님이 길이 예쁘다며 같이가자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백조가 과로사 한다고, 하루하루 분초를 다투는 권사님이 손(?) 없는 주말을 잡아 대관령 옛길을 다녀오자는 바램에 은정, 영주, 경숙 집사님과 함께 약속을 했다.
같이 움직이다 보면 간식이니 뭐니 먹을 것이 많아서 각자 준비할 것을 배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을 것이 충만하다.
금요일 밤,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4시 40분에 눈을 떴다.
커피를 내리며 김밥을 준비하며 청포묵을 준비하다보니 약속한 6시에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다.
평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오늘은 내가 지각하게 생겼으니 낭패가 아닌가.
아니나다를까. 5시 45분에 이미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맙소사...
그래도 머리는 빗어야 하고 얼굴은 찍어 발라야 하고, 작은 눈엔 색칠을 해야 한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인데다 예쁘기까지 하니, 두고두고 볼 사진에 찢어지게 생긴 눈에 팅팅 부은 얼굴이 바윗돌처럼 나와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빛의 속도로 머리를 감고 분을 두드리고 눈을 깜빡이고 나니 6시 5분,
결혼 40년만에 설겆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외출하는 것 또한 처음이다.
(서방이 말하길 쌀 한가마니 김밥 쌌어? 란다. ㅋㅋ).
부엌바닥에 김부스러기가 떨어진 것도 신경 쓰이고 여기저기 뭔가가 굴러다니는 것도 부담스럽고 싱크대 위에 수북하게 쌓인 설겆이거리도 자존심 상하지만, 5분이나 늦은 지각이 더욱 신경 쓰인다.
6시 10분에 일행을 만나 화도IC를 벗어난 그랜저의 김기사는 졸음에 겨워 눈을 뜨지도 못하지만 운전은 얌전하다.
차도 얌전하고 기사도 얌전하지만 뒷좌석 세명의 덩치는 넓은 좌석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편해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비비꼬면서도 행여 옆사람을 불편하게 할까봐 몸을 접고 웅크리고 말고 또 말아본다.
1시간을 달려 홍천휴게소에 도착하여 김밥과 청포묵과 토마토와 커피로 느긋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경기도와 강원도가 정말이지 한뼘 차이임에도 마치 도시여자들처럼 강원도의 산세가 다르네 어쩌네 하며 세련된 허세를 입으로 부려본다.
대관령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내려 주차비와 입장료를 계산하고 안내원의 설명 대신 이미 알고있다는 이유로 대관령 옛길을 향해 출발했다.
조붓한 오솔길을 걸어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 여전히 이쁘고 정답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날에 좋은 마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몇 발자욱 걷지 않아 노영주씨가 다리가 풀려 마음데로 흔들거린다는 말에 쓰러질뻔 했다는 ...
오죽하면 낙오시켜도 괜찮다고 했을까. 딸은 이렇게 엄마 걱정을 하는구나.
30분 정도 걸었을까,
계곡에서 잠시 쉬자는 말에 아무 생각없이 계곡물에 손을 씻는 순간, 머리위에 얹힌 선글라스가 물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게 아닌가, 물에 빠지는 것이 대순가, 온몸을 던져 안경을 잡다보니 하체가 몽땅 물에 빠졌다.
바지는 금방 말랐지만 주현이가 사준 등산화는 하루종일 질퍽거려 마치 해빙기 응달에서 녹아지는 얼음덩어리 같았다.
노영주씨가 나한테 어울릴거라며 선물로 준 선글라스였는데... 건져서 정말 다행이다.
주막터에서 경숙집사가 단호박과 감자로 만든 샌드위치와 야채쥬스, 거기다 육포까지 더해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이 정도면 1KM의 언덕배기는 아무일 없이 통과할 것이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든든하다.
그리고 이 생각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남편과 이 길을 올랐을 때 힘들었다.
그때는 아침을 굶었고, 남편의 발이 불편했고, 내가 급장염이 와서 설사에 배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언니 한분에 동생이 세명이고, 아침은 김밥과 묵, 넉넉하게 들이부은 커피, 간식으로 샌드위치와 쥬스와 중간중간 달달한 캬라멜과 오이와 육포와 또... 여러가지로 배를 채웠으니 충분히 풍욕재까지 갈 수 있으리라 믿고 또 믿었다.
그리고 풍욕재 앞에서, 대통령쉼터 앞에서 나에게 고마워할 그녀들의 인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못 볼 걸 보았나?" 싶을만치 황홀했던 소나무숲을 보여주었을 때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녀들의 감동과 감격을, 그리고 말로할 수 없는 감탄을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내가 했던 감탄처럼, 감동처럼.. ㅡㅡ그렇게
1킬로미터의 길이 우리 사이를 홍해처럼 갈라 놓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주막터까지 룰루랄라였던 소리들이 어느 순간 침묵으로 변하고, 침묵이 원망스러운 눈총으로 변하고, 눈총이 외면으로 바뀌던 그 순간을 내가 어이하리요!!
끝이 보일 것 같은 길의 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언니권사님은 뒤도 보이지 않고 날다람쥐처럼 달아나고 없고, 둘째언니인 나는 뒤에서 죄인처럼 말 한마디 못하고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걷고 또 걷고, 앞에 선 동생들은 눈물인지 땀인지, 원망인지 미움인지, 한숨인지 욕인지, 대놓고 외면하며 씩씩거리며 한걸음 떼고 한숨 다시 한걸음 떼고 한숨...
그날 우리는 각자 결심했다.
"두번 다시 이진옥이랑 어디가나 보라~~"
"다시는 동생들과 걷기 같은거 안해야겠다"
죽을만치 힘든 동생들의 몸(심장이 좋지 않고 혈압이 있어서 그렇게 힘든거 난 잘 몰랐다),
그보다 더 죽을만치 괴롭고 힘든 내 마음,
아~~~~~~ 생각조차 싫습니다.
아무튼 그랬습니다.
물치항에서 안권사님이 회와 물회, 그리고 매운탕까지 화끈하게 사주셔서 오직 회로만 배를 채우고 매운탕엔 손도 가지 않았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내린천 휴게소에서 노영주씨가 차와 아이스크림으로 분위기를 달달하게 만듦으로 고된 마음을 다시 달달하고 행복하게 풀어줌으로 기어히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 주었음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