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 문학동네
정세랑,
1984년 서울생
정세랑의 책은 처음이다.
ㅎㅎㅎ
웃자.
웃고 시작하자.
처음 책을 고르고, 책이 도착하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까지
책의 제목이 '사선으로부터'인 줄 알았다.
예전에 읽었던 선교사의 이야기 '사선을 넘어서'를 기억하며 주문을 했고,
그 언저리쯤의 책이려니 했던 걸까.
책장을 넘기자 시선으로부터,라는 글씨를 읽고 웃었다,
그리고 시선으로부터,는 視線으로부터라고 짐작을 하고 읽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읽고 다시 웃었다.
시선은 심시선이라는 여자였다.
나의 성급함과 경솔함에 웃었다.
심시선,
중국계 여자 심시선은 거의 천재이다.
글과 그림에 능하여 당대에 뛰어난 여류시인이자 화가였다.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독일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가계를 이어갔다는 이야기이다.
심시선이 죽은 후 남겨진 자녀들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장녀인 명혜로부터 심시선 여사의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자는 연락을 받는다.
어머니이자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반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흔한 제사가 아닌 뜻깊은 제사를 지내자는 장녀의 뜻에 따라 심여사의 권속들이 하와이에 모여들게 되고 장녀 명혜는 심시선 여사를 기억하는 의미 있는 물건 하나씩을 가져오라고 통보한다.
딸과 아들, 사위와 손녀와 손자들은 모두 심시선여사와의 생존의 기억을 추억한다.
가장 소중했던 기억, 잊지 못할 추억, 함께 했던 시간들은 추억이 되고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고, 고단한 걸음에 지팡이가 되어 주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가족이지만 누구도 같은 방향으로 살아갈 수는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각자 속한 삶의 이야기, 각자의 아픔과 슬픔, 성격과 취향을 보며 우리네 인생이 모두 그러함을 문득 깨닫는다.
가족이란 이유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공통적인 공감은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해할 수는 있지만 같을 수는 없다는 것,
둘도 같을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왜 이리 새삼스러운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처해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가두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다.
가족이기에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젊은 작가여서인지 상당히 객관적이란 것이 마음에 든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냉정하게 표현할 수 있음이 작가의 역량일까?
한 인물을 두고 여러 명의 가족이 추억하며 바라본다는 것,
각자의 삶에서 가족을 생각하는 방법과 사랑하는 법, 서로 기대며 어깨를 내어주는 법,
왜 가족인지를, 가족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어서 참 좋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결국은 가족으로 합하여지는 따뜻함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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