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가재가 노래하는 곳

여디디아 2023. 1. 17. 13:12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 김선형 / 살림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조지아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대학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7년 동안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란

소설이 쓰였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 소설의 핵심은 '외로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지만 소설은 진정한 외로움이 무언지를 압축 해서 보여준다.

 

1부 습지

2부 늪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 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 -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p.13)

 

습지나 늪이나 같은 곳이 아닌가 싶은데, 소설의 첫 문장에 습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1969년 어느 날, 마을의 스타인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늪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미스터리 한 시체의 발견으로 인해 추리소설인가 싶지만 한 여성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게 낫겠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습지를 배경으로 캐서인 대니얼 클라크 가족이 산다.

술주정꾼인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엄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엄마가 다섯 살짜리 카야와 언니 오빠들을 뒤로하고 집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카야는 엄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엄마가 떠난 후에 아버지의 폭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빠와 언니가 차례로 집을 떠나고 습지 오두막집에 아버지와 어린 딸만 남는다.

다섯 살짜리 카야는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음식을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가 주는 적은 돈으로 장을 보고 살림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마저 집을 떠난 후 카야는 습지 오두막에서 혼자만의 삶을 살아낸다.

 

돈이 떨어지자 카야는 여섯 살 어린 나이로 습지에 나가 조개를 캐고 홍합을 팔아 끼니를 연명한다.

점핑과 메이블 부부가 어린 카야를 보살펴주고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

홍합과 조개를 팔던 카야는 아버지의 보트로 낚시를 하여 훈제생선을 팔기도 하며 감당할 수 없는 일상을 묵묵히 감당한다.

 

조디오빠 친구인 테이트는 야생돌물과 식물에 대한 관심으로 습지에 나와서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테이트에게 카야는 좋은 동생이며 동료이기도 하고 연인이 되기도 한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버림, 형제자매로 인한 버림,

모두가 떠난 카야의 삶은 외로움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모두가 떠나지만 자연은 그 자리에 있음을 카야는 어린 나이에  깨닫는다.

'한참 냇물을 건너는데  발 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는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p.267)

 

믿을 수 없는 인간에 비해 한결같은 자연을 대하는 카야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자연을 품는다.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 그 자리에서 자기를 지켜봐 준다는 안도, 무한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카야는 깨닫는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연구하며 관찰하기에 이른다.

깃털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고 풀잎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새 한 마리에도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카야는 동식물에 대한 훌륭한 자료를 남김으로 테이트의 좋은 친구이자 과학적인 동료로 부족함이 없다.

 

습지에서 혼자 살아가는 카야를 사람들은 마시 걸이라고 부르며 별별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테이트가 대학으로 떠난 후 체이스 앤드루스가 카야에게 접근하고, 사람이 그리운 카야는 체이스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결국 체이스의 놀음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카야는 체이스에게 복수하는 반전을 보여준다.

 

외롭다는 건, 사람이면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다.

카야처럼 철저한 외로움을 겪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진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살아내어야 하는 삶,

자신의 힘으로 먹고 입고 살아내는 것,

 

'이래서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거야.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이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p.434) 

 

'그의 뒤를 쫓았다. 몰래 맴돌면서, 사랑을 훔치면서 절대로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서,

 강어귀 너머에서 사람을 사랑하면 상처받을 수도 없다. 테이트를 거부했던 그 오랜 시간 내내

 카야는 테이트가 습지 어딘가 있었기에 기다려 주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p.438)

 

가만히 있어도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 드러내지 않아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절실함,

그런 절실함이 있었기에 카야는 훌륭한 삶을 흘러 보냈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성급하게 판단하는 어리석음,

외로운 소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책을  보냄으로 결국 멋진 시인을 탄생시킨 테이트,

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며 감동적인지.

 

자연을 사랑하고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카야의 일생은 아름답고 거룩하고 장엄하다.

배심원들조차 감동시켰던 체이스의 죽음은 카야의 세밀하고 완벽한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외국소설을 잘 읽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흥미와 재미와 감동이 넘치는 책을 읽는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결국 우리가 꿈꾸는 곳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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