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여디디아 2023. 2. 3. 15:32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메이븐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용감히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느긋하고 유연하게 살리라.

그리고 더 바보처럼 살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헤엄치리라.

아이스크림은 더 많이 그리고 콩은 더 조금 먹으리라.

어쩌면 실제로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거리를 상상하지는 않으리라.

 

- 나단 스테어의 시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서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의 글이다.

2001년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22년 동안 병마와 전투를 벌이며 삶을 즐기고(?) 있다.

1959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글을 읽으니 동갑이라고 하기엔 너무 높은 곳에 있고, 너무 먼 길을 갔고, 너무 많은 일을 치렀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재능이 있어서 의대에 합격을 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환자들을 치료하며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과 며느리로서의 삶을 억척스럽게 감당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것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이유이겠다.

그런 시대가 흘러 지금은 '나'를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맞닥뜨림으로 때론 '팔자 좋다'는 말로, '여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란 말로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지만 늦기 전에 이런 자유로운 세상, '나'가 '나'인 세상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작가는 22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으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

분주하게 살 때에는 몰랐던 일들이, 환자로 남은 시간이 되어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았던 날들이, 내 육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놓아준다. 물론 놓아주기보단 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내려다보게 된다.

 

1.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

2. 환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

3. 내가 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는 이유

4. 마흔 살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

5.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에필로그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기억하고 싶고,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할  좋은 글이 빼곡하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 그러면서도 주춤거리게 되고 머뭇거리게 되는 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자신에게 조용하게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감사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물처럼 숨겨 놓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 곁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가 되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날씬했던 허리와 정열, 모험심, 시력 등이 사라져 가는 것을 그냥 바라봐야만 한다'(P.178)

 

동갑으로 살아가는 친구의 말은 지금의 나를 나타낸다.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나이에 맞게 살아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에 맞는 사고와 일상을 살아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속된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죽음은 오히려 내 인생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P.274)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병을 안고 살아가며 죽음을 준비하며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두려울 일이지만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이기 위한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처연한 슬픔이 차오른다.

건강한 사람에겐 죽음이 남의 일인 듯 하지만, 

나와 같은 누군가는 불시에 찾아올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니 나의 일상에도 의미를 부여해야겠다는 다짐이 슬그머니 내 손을 잡는다.

 

작가의 병이 완쾌되길 바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글로서, 누군가의 마음의 병을 들여다보며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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