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 임호경 / 열린 책들
나의 할아버지는 청중을 휘어잡는 재능이 있으셨다.
코담배 냄새를 물씬 풍기며 지팡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벤치에 앉아 계시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그분의 손주인 우리가 입을 헤벌리고서 하던 질문도 아직 귀에 생생하다.
<할아버지...... 그게...... 진짜 정말이에요.......?>
<진실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단다>
하고 할아버지는 대답하셨다.
이 책을 그분께 바친다.
요나스 요나손
"내가 백 살 생일날 1층에서 뛰어내렸잖아.
좀 높더라고......! "
알란 칼손은 양로원에서 생을 즐기고 있다.
백세를 맞이한 알란 칼손을 위해 양로원 원장은 거대한 파티를 기획한다.
동네 유지들을 초청하고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까지 내면서 말이다.
생일날 아침,
주인공인 알란 칼손이 1층 창문을 뛰어넘어 양로원을 탈출하는 것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백세까지 살았다는 이유로 신문에 얼굴을 드러내기도 싫을 뿐 아니라
굳이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창문을 뛰어넘어 도망친 알란의 도주극이라고 해야겠다.
몇 푼 되지 않은 돈으로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서 돈가방을 잠시 맡게 되지만
차가 떠날 시간이 되자 어쩔 수 없이 돈 가방을 들고 떠난다.
가방에 5000 크로나라는 거액이 들어 있는 것으로 문제는 시작된다.
돈 가방을 안고 도망하는 알란 칼손에게 동업자가 생긴다.
돈을 나누어 갖기로 하고 이들은 떠돌아다니며 숨을 곳을 찾는다.
가는 곳마다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알란 칼손이 100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이 소환된다.
폭탄제조를 하는 이력을 가진 알란은 어디서나 필요한 존재로 받아들여져 각국의 정상들을 친구로 부르게 한다.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피할 길이 먼저 준비되어 있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거나 속지 않고 정직한 마음으로 위태한 상황을 넘기는 알란 칼손의 삶을 부러워하기엔 가당치 않은 현실임을 인정한다.
폭탄 제조라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알란,
100년 동안 만난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정치, 문화, 사회를 배운다.
100세 노인이 창문을 넘어서 도망친 사실보다 100세 동안 살았던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놀랍다.
백 년을 살았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고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단다>
소설은 소설일뿐이다.
진실을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즐겁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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