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내 눈의 누르(빛)인 하리스와 파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것은 처음이다.
탈레반이, 우리가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탈레반이 소설 속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역행하는, 지구에서 없어져야 하는 탈레반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고, 같은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았던 사람이라니...
물론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웃을 사랑하거나 배려하는 일 보다 자기만 고집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난지 20년이 지나 미국에서 소설을 쓰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아미르는 2001년 라힘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곳을 한번 다녀가라며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 라는 말과, 연을 쫓아가며 외치던 하산의 말이 떠올랐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1975년 아직 자유롭던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을 떠올리며 자신을 괴롭히던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프가니스탄의 전통놀이 중 하나는 연 날리기이다.
각양각색의 연이 하늘을 날으고 높이 나는 연을 다른 연이 날아가 줄을 끊고, 가장 마지막에 남는 연이 승리를 하는 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땅에 떨어진 연을 쟁취한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인데, 연이 어느 곳에 떨어질지 모른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서 연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연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서 달리지만 아미르의 종인 하산은 신발을 벗어 먼지가 날리는 방향을 보고 연이 낙하할 방향을 미리 정하여 달려가 연을 기다린다.
어김없이 하산의 선택은 옳았고 하산의 지혜로운 선택 덕분에 아미르는 연을 쟁취하여 승리자가 된다.
유약하고 내성적인 아미르가 태어나면서 엄마가 죽고, 하산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엄마가 집을 나간다.
아미르와 하산은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라고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다는 것은 같은 엄마를 가졌다는 뜻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그의 종인 하자라인 알리와 알리의 아들인 하산을 차별하지 않고 진정한 가족처럼, 하산을 아들처럼 대하고 친구인 라힘 칸을 역시 가족처럼 대하며 한 집에서 지낸다.
아미르의 종이자 친구이기도 한 하산은 아미르와는 다른 성격이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가 볼 때 아미르는 유약하고 내성적이어 마음에 차지 않지만 하산은 늠름하고 용기가 있고 추진력이 강해 바바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바바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그런 바바를 바라보며 아미르는 하산을 질투하며 바바의 사랑을 갈구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연날리기를 하는 날, 마지막까지 남은 연을 아버지께 맡긴 후 연을 쫓으러 간 하산을 찾으러 간 아미르는 친구 아세프와 친구들에게서 연을 빼앗기는 대신 강간을 당하는 하산을 보게 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그로 인해 죄의식을 느낀 하산은 생일선물로 받은 시계와 현금을 하산의 방에 감추고 아버지에게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세우고 결국 알리와 하산을 집에서 내쫓게 된다.
1979년 12월 전쟁이 심해지자 아미르와 바바는 아프가니스탄을 피해 미국으로 가게 된다.
미국에서 소설가로 명성을 얻고 아프가니스탄 장관의 딸 소라야와 결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아미르에게 라힘 칸의 전화는 그동안 숨겨왔던 아미르의 고통과 죄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간 아미르에게 하산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라힘 칸은 아미르를 위로한다.
"양심도 없고 선하지도 않은 사람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p.443)
아버지가 하인의 아내를 범함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가 하산이었으며, 하산이 자신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이 아미르를 충격에 빠트린다.
아버지는 이웃에게 최대한의 선을 행함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으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산을 바라볼 때마다 느꼈을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으며, 자신의 비겁함으로 하산을 집에서 쫓아냈을 때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지,
소랍을 구하기 위해 아세프와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비로소 아미르는 그동안 비겁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해 연을 뺏기지 않으려 오히려 강간을 당하던 하산을 위해 돌아서던 자신의 비겁함,
그런 하산을 도둑으로 만들어 쫓아내던 자신의 비겁함,
평생을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고통
"용서는 그렇게 싹트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는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p.532)
조카인 소랍과 연을 쫓아가며 연과 더불어 마음도 떠도는 것이라 여기며 용서와 사랑을 함께 배워가는 한 인간이 인상 깊다.
끝까지 소랍을 책임지려는 아미르의 마음에 하산에 대한 사랑의 빚이 들었음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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