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교만했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주변의 거의 모든 이가 고생을 하는데 난 멀쩡했다.
특별히 마스크를 잘 쓴 것도 아니고, 사람을 가려서 만난 것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는데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를 피해 가는 줄 알았다.
조카결혼식에서 내 교만함이 꺾였고, 무증상이면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교만함마저 꺾였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출근을 못하고 교회를 결석한다는 소식을 카톡에 전하자마자 빗발치는 전화,
그리고 문 앞에 놓이는 음식들..
추어탕과 콩나물국밥, 피자, 오렌지, 사과는 말할 것도 없고 본죽은 전복죽과 호박죽, 팥죽이 날마다 배달되어 왔다.
그뿐인가!
영양제 맞고 일어나라며 현금을 통장에 보내주는 언니, 병원에 데려다주는 동생도 있고, 병원에 직원가로 접수해주는 집사님도 계셨다.
덕분에 일주일이 지난 후,
후유증 없이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다.
얼마 전이다.
출근 준비를 위해 화장을 두들기고 있는 데 서방이 말한다.
"에르메스 가방이 비싼 거야?"
"응, 몇백만 원 한대" (난 몇천만 원 한다는 건 몰랐다, 정말)
"뉴스에서 세금을 안내는 집안을 수색하는데 그 가방이 몇 개가 나오고 현금이 몇 억이 나왔대"
그렇게 말을 하고 서방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얀 분을 두들기다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려 화장실 문을 열고 말했다.
"친정식구 중 몇백짜리 가방 하나도 없는 사람 나 밖에 없어"
그리고 다시 분을 바르다가,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벌컥,
"친구들 중에도 몇백짜리 가방 없는 사람 나밖에 없어"
다시 방으로 돌아와 아이섀도를 바르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시 화장실 문을 벌컥
"결혼 후 이렇게 개고생 하는 건 나밖에 없어. 이 나이까지 일하고 살림하고"
"알았어, 이번에 보상할게"라는 서방
말을 하다 보니 억울하고 분하고 괘씸하고 원통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충 화장을 끝내고 나니 서방도 볼일을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씩씩대며 붉으락푸르락하는 나를 보더니
"가방 얼마면 사? 보상할게. 300이면 돼?" 란다.
"정말 보상할 거냐? 당신 기절하지 않게 내가 제안할게.
현금 300만 원에 제주도 한 달 살기 할 거야"
내년에 발이 나으면 그렇게 하라는 말에 아침부터 치미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혔다.
사실 난 비싼 가방이 조금도 부럽지 않고,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 인생이 일류인데, 명품 가방이 없다고 삼류가 되는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몇백만 원을 주고 가방을 사라고 하면 당연히 노노~~ 이다.
며칠 전 친한 친구와 모여 그 날 아침을 이야기했다.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 하는 말,
"권사님 제가 3년 전에 일본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산 가방이 있는데 지금은 필요가 없어서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권사님 드릴게요" 란다.
당연히 아니라고 사양했는데 다음날 예쁘게 포장된 가방이 나에게로 왔다.
역시 처음 들어본 브랜드이고 가격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못한다.
친정 자매들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엄청나게 비싼 가방이며, 이쁘며, 부럽다고 난리다.
나,
이 정도면 잘 살아온 것 같지요?
기고만장합니다^^
아무렴요!
나도 명품 가장 있습니다~~~
저렇게 앙증맞고 이쁜 가방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