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최은영의 짧은 소설이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애쓰지 않아도
데비 챙
꿈결
숲의 끝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한남동 옥상 수영장
저녁 산책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문동
호시절
손 편지
임보 일기
안녕, 꾸꾸
무급휴가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아서, 이게 소설인가? 낙서인가? 투정인가? 에세이인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소설이다. 작가가 소설이라고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은 장편소설을 읽은 것처럼 길고도 묵직하다.
짧은 소설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소설 속에 나오는 그림을 들여다 보고, 맺음의 점을 들여다 보고,
문장 사이의 띄어쓰기를 생각하고, 글 속에 나오는 인물의 마음에 내 마음을 대입시켜 보았다.
아프기도 하고, 시리기도 하고, 마무리 지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녹아내리지 못한 채 속에서 뒹굴거린다.
그중에서 무급휴가가 마음에 닿았고
결국 나를 무릎꿇게 한 것은 '애쓰지 않아도'였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종교단체에 들어가고 아빠와 함께 서울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한창 예민한 고 1 때, 친구도 없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유나라는 인기 많은 친구가 다가온다.
그런 유나가 너무 고맙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유나의 그룹에 동참하게 된 것이 영광으로까지 생각된다.
그룹에서 선아와 가장 친했지만 엄마가 종교단체에 빠져서 서울로 이사 오게 된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수학여행에서 유나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유나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인 줄 알았는데,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선아로부터 모든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충격을 받는다.
'유나가 무슨 마음으로 내 비밀을 퍼뜨렸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나가 겉과 속이 달라서,
교활해서,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p.31)
'유나에게 느꼈던 선망은 내 오래된 열등감의 다른 말이었다. 나는 유나를 증오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p.30)
가족을 버리고 종교단체에 빠진 엄마에 대한 원망과 외로움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나를 위로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그런 엄마를 향하여 나와 같이 한마디의 욕을 던져주는 것이 위로가 아닐까.
어쭙잖은 위로나 비밀을 퍼뜨리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상처가 되는 것을 이미 알 것이고, 어쩌면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나의 마음이 담아져 있다.
증오하고 나서야 상대방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말에 섬뜩하기도 하지만, 날마다 혼자서 넋두리처럼 쏟아내는
말들이 언제쯤 끝이 날지 알 수가 없다.
그 끝이 증오가 아니고 이해이며 용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짧은 소설이지만 긴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