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 듦의 새로운 태도
르노도상, 메디치상 수상에 빛나는 프랑스 대문호가 우리 인생에 권하는 지혜롭게 나이 드는 법
프롤로그 - 나이가 들었다고 꼭 그 나이인 건 아니다
포기 - 포기를 포기하라
자리 -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루틴 - 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한다
시간 - 당장 죽을 듯이, 영원히 죽지 않을 듯이
욕망 - 아직도 이러고 삽니다
사랑 - 죽는 날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기회 - 죄송해요, 늦으셨습니다
한계 -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죽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 - 불멸의 필멸자들
에필로그 - 사랑하고, 찬양하고, 섬기라
뭐라고 할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침묵 해야 하나?
짧은 소견으로 독후감을 쓰기엔 버겁다 진정.
책 한 권을 읽으며 어쩐지 나는 인생을 알아버린 것 같다.
아니 사람의 생애,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을 마주 대한 듯하다.
그것이 내 모습이든, 친구의 모습이든,
어쩌면 나의 모습이 가장 클 것이다.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난다
'하루하루가 완전한 인간 극장이다. 하루는 삶을 잘라내 보여주는 상징체계다. 눈부신 새벽, 의기양양한 정오,
수고로운 오후, 차분한 황혼을 보라.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일상의 죽음에서 벗어나는 작은 부활이다' (p.78)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일상이 작은 부활이라니 놀랍고 맞는 말이다.
하루를 정확하게, 차분한 모습으로 되돌아보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생명인데 왜 그렇게 무방비로 살아가는지,
내 생각은 늘 경박하고 욕망은 천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오지 않을 날을 바라보자니 껍데기로만 살아가는 내가 보인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모든 것,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았던 일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임을 애써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오지 않은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는데 준비하지 않는 이 건방짐은 또 무엇인지.
'성장이 나를 긍정하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노화는 비틀거리는 것이다. 꿋꿋이 살아왔다는 사실이 나를 소유자로 만들어주기는커녕 내게서 소유권을 빼앗아 간다'(p.301)
어쩌면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긍정을 주장하기에는 세상은 디지털로 바뀌었고, 거기에 적응하기엔 나는 느리고 귀찮은걸 보면 분명 나는 비틀거린다.
비틀거린다는 것은 노화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노화 속에 있다는 것은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육신과 영혼과 마음이란 것을 기억한다.
육신을 지키기 위해 좀 더 조심스러운 일상을 지켜야 하고, 영혼을 지키기 위해 신앙의 근육을 키워야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선 봉사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굳이 '아직은 아니다'라고 고집하지 말자.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금방 내게로 오고 있음을 기억하자.
봄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간 속에도 오지 않을 듯하던 날들이 오고 있다.
유익한 책이다.
나이 들어가는 이들이 한 번쯤 읽어야 할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