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 창비
반갑다.
몇 년 전의 표절 사건으로 인해 혹여 절필할까 봐,
독자들에게 부끄러워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오랜만에 출간된 '아버지에게 갔었어'라는 책의 두께가 두꺼워서 마음이 놓였다.
어쩌자고 책값은 날마다 올라가는데 책 두께는 얇아져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딸의 생일날,
집에서 멍을 때리다 갑자기 오늘이 딸의 생일인 것을 깨달은 나는 딸을 데리러 학원으로 간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딸이 주위를 살피지 않고 엄마에게로 뛰어 오고,
달려오던 트럭에 부딪혀 사망한다.
그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친정 식구들이 단체톡을 만들어 집안 소식을 전할 때도 눈으로 읽기만 할 뿐 침묵으로 일관한다.
4남 2녀를 둔 부모님은 어느새 연로하여 살아온 날보다 죽음의 문 앞에 서 있다.
엄마는 위암 수술을 하고 아들네 집에서 머물고, 치매가 시작될 즈음 아버지 혼자 계시는 J읍엔
남매들이 주말마다 교대로 내려가 아버지의 필요를 채워드리곤 하지만 '나'는 집에 갈 생각조차 않는다.
그런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언니 이야길 하시면서 우셨다"는 말에 아버지에게로 가게 되고 아버지와 둘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1장 너, 본 지 오래다
2장 계속해서 밤을 걸어갈 때
3장 나무궤짝 안에서
4장 그에 대해서 말하기
5장 모든 것이 끝난 그 자리에도
작가의 말
1장에서 4장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평범한 모습이 그려졌다.
오히려 예전의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가 보이질 않아 의아하기까지 했다.
4장에서 '그에 대해서 말하기'에서 눌러져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소리 나는 대로 쓴 아버지는 리비아에서 근무하는 아들을 위해 한글을 배우고 공부를 시작한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는 아버지 편지의 끝인사를 읽다 보니 그 간절함이 내게로 닿아 눈물이 쏟아진다.
아버지와 큰아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궤짝 안에 신성한 무엇이 되어 남아 있다,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하나하나 들추어내고
아내 정다래가 남편에 대한 마음을 되새김질하듯이 새긴다.
아버지 친구 박무릉의 아버지에 대한 인연과 추억, 그리움은 어쩌면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 진다.
또한 아들의 아들인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고모에 대한 추억을 나직하게 전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세상에 저렇게 애틋하고 정이 많은 가족이 있을까 싶어 진다.
엄마의 위암을 엄마에게 알리지 말자고 형제들이 소곤거리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아버지와 엄마는 걱정될 소식은 자식들에게 알리지 말자고 다짐하는 사람들,
그게 가족이었다.
내가 22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또한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다고 해도 이렇게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었을까 생각하니 그것 또한 아닌 것 같다.
우리 아버지 또한 정이 많으셨는데 자식들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으며, 자식들의 일상이 또 얼마나 궁금하셨을까를 이제야 생각하다니...
라디오에 귀를 대시고 서울소식만 기다리시던 아버지,
장마로 인해 동대문구에 물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언니와 오빠의 괜찮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서성이시던 아버지,
그땐 몰랐었다.
아버지의 모든 안테나는 자식들에게로 향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도 깨닫지 못했던 일을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으니...
우리 아들들은 또한 아버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을 나누며 힘든 상황에 아버지가 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는 할까?
우리 아들도 아버지와 마음을 나누고 안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도 웃으며 나누고 심각한 고민도 남자로서 상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버지에게 슬며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바랄게 없겠다만...
작가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식을 앞세운 일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조용한 울림이 큰 깨달음이 되고 결국 눈물로 남는다.
역시 신경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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