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희한한 일들이 많다.
명절이라고 해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날 말이다.
설날에는 작은아들네가 와서 하루를 묵어갔고 일주일이 지난 주말엔 큰아들네가 왔다.
결혼하더니 집에 오는 것은 마치 사돈네 오는 것처럼 뜨악한 주현이는 하룻밤 잠자는 것도 못마땅해한다.
반면 인아는 할머니네 오면 하룻밤 묵어가는 걸 소원처럼 여긴다.
토요일에 온 인아가 하룻밤을 자고 가겠다고 해서 아들 부부는 집으로 가고 인아만 남았다.
토요일 밤, 여전히 할아버지한테 '다리를 주물러라, 발목을 주물러라' 요구사항이 많았는데 할아버지가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발목과 다리를 주물러 주어야 했으니...
주일 아침, 셋이서 영상예배를 드렸다.
찬송가도 곧잘 따라 하고 할아버지가 눈을 감고 있으면 살그머니 다가가 귀를 잡아당기기도 해 긴장하게 만든다.
찬송가를 크게 부르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걸 보니 딸이 있는 집안이 그려진다.
예배 후 아파트 앞동산에 올랐다.
평소에 내가 등산을 자주 한다고 하니 산에 가자고 하는데 내가 산행을 하는 곳엔 데려갈 수가 없다.
다음엔 데려가 볼 계획이다.
동산이라고 해도 오르막이 있어서 만만치 않은데 두 바퀴를 돌고도 더 걷고 싶다기에 반을 더 돌았다.
1시간 30분 동안 걷기도 하고 운동기구에 매달려 허리도 돌리고, 다리고 돌리고, 엉덩이도 세우기를 반복하며 인아가 가르쳐 주는 데로 열심히 운동기구에 매달렸다.
평소 인아와 함께 가고 싶었던 돈카츠 Five Day에 가서 안심과 치즈 맛을 주문했다.
신기해하면서도 맛있다며 다음에 또 오겠다는 인아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
할머니네 오면 가장 좋은 점이 숨바꼭질하는 것과 목욕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숨바꼭질을 좋아하나 보다.
지유는 "꼭꼭 숨어라"하자며 조르고, 인아는 확실하게 숨바꼭질을 하자며 조른다.
한번 시작하면 20번 정도는 해야 아이들이 만족을 한다.
숨바꼭질을 하고 집으로 가기 전 둘이서 욕조에서 한 시간 정도 물장난을 하기도 하고 역할놀이도 하면서 씻는다.
아이들은 물에 놀아서 좋고, 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고, 할아버지는 뒷설거지를 해서 좋은(?)...
뭐니 뭐니 해도 며느리들이 가장 좋아하고 행복해한다.
할머니 손에서 머리에서 발 끝까지 깨끗이 씻겨 나오니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추석에 곤지암에서 두 눈으로 확인했다. ㅋㅋ
인아가 아빠한테 전화를 한다.
"아빠 우리 다섯 시에 출발하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되지?"..
".... ㅎㅎㅎ 당황한 웃음소리..."
'이놈의 시키가... 엄마가 하룻밤 잔다는데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않다니...'
인아가 독촉을 하니 "알았어"라는 억지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이렇다. 뭐 섭섭하거나 그런 건 없다. 그러려니... 한다.
인아와 용인을 향하는데 자동차로 인해 길이 밀린다.
인아가 하는 말이 "밀리면 더 좋지 뭐. 할머니랑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
이런 손녀가 있는데 까짓 아들에게 뭘 기대하겠는가.
용인에 도착하니 성희가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꽃게탕과 제육볶음을 해놓고 기다린다.
얼마나 기특하고 고맙고 대견한지.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 놓는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하다.
디저트로 나온 딸기와 라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행복한 마음이 향기로 남는다.